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와 황사가 누그러진 지난 23일 오후 1시. 서울 덕수궁 옆에 있는 서울시청 서소문청사에 502번 시내버스 한대가 들어왔다. 버스에 탄 손님은 없었다. 502번 버스는 경기도 의왕·고천과 서울 한국은행·신세계백화점을 오간다. 이 버스가 정류장도 없는 서소문청사에 왜 들어온 것일까.
이 버스를 유심히 보니 운전석 아래에 ‘천연가스(CNG)버스’라고 적혀 있었다. 서소문청사 출입문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The Clean Station’이란 천연가스 충전시설이 있다. 이 충전시설은 2007년 5월2일부터 버스와 청소차 등에 가스를 공급하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충전시설이 서소문청사 안에 들어선 과정이 흥미롭다. 2000년 이후 서울시는 대기오염의 주범으로 알려진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시내버스와 대형 청소차 등을 천연가스 차량으로 교체하고 있다. 2012년까지 버스 7471대를 교체했다. 천연가스 시내버스 보급 등을 통해 미세먼지 농도를 2002년 76㎍/㎥에서 2013년 45㎍/㎥로 약 41% 줄였다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천연가스 차량 운행을 늘리려면 천연가스 충전소를 서울 시내 곳곳에 지어야만 한다. 서울시는 외국의 사례 등을 들어 천연가스 충전시설은 이미 안전성과 친환경성이 입증된 시설이라고 설득했지만 일부 주민은 ‘발암물질 배출과 폭발 위험’을 들어 강하게 반대했다.
서울시는 안전성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2007년 서울 도심 한복판이고 공무원 업무공간인 서소문청사에 충전시설을 세웠다. 서소문청사에는 교통과 환경 분야 시 공무원 등이 근무한다. 만약 충전시설이 폭발하면 교통 담당 공무원부터 피해를 본다. 이 때문에 서울시 공무원들은 서소문청사 충전시설을 두고 “몸바쳐 충성했다”고 농담을 한다. 약 8년 동안 서소문청사 충전시설에서 사고는 없었고, 충전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을 없애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서소문청사 충전소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서울에 있는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때문이다. 원안위가 지난달 27일 경북 경주시 월성 1호기 수명 연장을 결정한 뒤 부산 등 지역에서는 ‘왜 원안위가 서울에 있어야 하느냐’는 의문이 터져나오고 있다. 현재 원안위 사무실은 서울 도심인 광화문 근처 케이티 빌딩에 있다. 원전이 있는 전남 영광, 경북 경주, 부산 등과는 300~400㎞ 떨어져 있다.
원안위가 월성 1호기 주변 주민들의 불안감과 폐쇄 요구와는 동떨어진 원전 수명 연장 결정을 내린 것을 두고, 원전 지역 주민들은 수도권 중심의 ‘책상행정’의 결과라고 본다. ‘원전 사고가 나더라도 나와는 거리가 먼 시골의 일’이란 인식이 아니냐고 의심한다. “원전이 그리도 안전하다면 정책 결정집단이 모인 세종시에 하나, 서울 강남과 강북 사이 한강 가에 하나 세운다면 어떨까요?” 주강현 제주대 석좌교수가 원안위의 월성 1호기 수명 연장 결정 이후 페이스북에 남긴 글도 이런 문제의식이 담겼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 6기에 더해 앞으로 7기가 추가로 들어설 부산시는 6월께 원안위 부산 이전을 건의할 방침이다. 원안위가 원전 안전 문제를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로 여길 것이란 기대감이다. 내가 생각해봐도 원전 정책에 대한 대국민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되고, 만일의 경우 사고가 나더라도 신속한 대응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천연가스 충전시설이 있는 서울시 서소문청사와 광화문 원안위 사무실은 1.2㎞가량 떨어져 있다. 걸어서 15분 거리다. 원안위 직원들이 점심 먹고 봄날 산책 삼아 서소문청사에 들러 ‘터지면 나부터 죽겠다’는 서울시 공무원의 자세를 배웠으면 좋겠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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