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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이제 임시정부 기념관을 건립하자 / 이종찬

등록 2015-04-09 18:47

해마다 4월이 되면 티에스(T. S.) 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그렇다. 우리 민족도 그 잔인했던 일제 강점에 대항하여 4월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를 세워냈고, 이를 중심으로 26년간 피나는 투쟁을 벌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4월 사상, 이념, 지역을 초월한 삼일독립정신을 토대로 임금의 나라 ‘대한제국’을 끝내고 백성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혁명적인 출범을 했다. 그것은 우리 민족 사상 최초로 민주공화정의 실시를 내외에 선포한 것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이때 주춧돌이 놓였다.

이 때문에 1948년 제헌의회 개원식의 개회사에서 의장인 이승만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기미년(1919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이십구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는 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요”라고 했다. 실제 우리 정부의 관보 제1호는 발행일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명시했다. 그 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지만 오늘날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헌법의 전문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한 것도 결코 일개 수식어일 수 없고, 엄연히 이런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마땅히 ‘대한민국 임시정부기념관’부터 건립하여 이런 민주공화정의 시대정신을 역사적 연원으로부터 소개하며, 이를 지키고 달성하고자 얼마나 많은 선열들이 피 흘려 싸웠는지를 후세에 알려야 했다. 그것이 가장 소중한 국민교육이었다. 그 시점에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 있었을까? 그런데 이를 소홀히 하고 등한히 함으로써 마치 우리가 뿌리도 없는 외래 민주주의를 광복 이후에 비로소 직수입한 후진국인 양 스스로 비하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왜 이런 착시가 일어났을까? 일부 부일·반민족 세력이 냉전·수구 논리를 앞세워 마치 임정이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반대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직시해야 한다. 대한민국 초대 정부를 구성한 대통령(이승만), 부통령(이시영), 국무총리(이범석) 모두가 임정 인사다. 제2대 총선거에서는 제헌의회 선거에 불참했던 인사들, 이를테면 조소앙, 지청천, 김붕준, 윤기섭 등도 대거 참여했다. 불행히 그분들 중 많은 이가 6·25전쟁 중에 납북되었지만 말이다.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사업회 부회장·전 국가정보원장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사업회 부회장·전 국가정보원장
그동안 항일 투쟁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선열들 가운데 몇몇 개인을 위한 기념관이 지방 곳곳에 세워져 국민교육에 큰 역할을 해온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독립정신과 민주공화정의 정신은 그런 개인의 역할을 훌쩍 뛰어넘는 것이다. 이는 민족의 가치요, 대한민국의 토대일뿐더러, 이 나라가 존속하는 한 우리가 영구히 지켜내야 할 가장 귀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를 고취하는 일이 대한민국 정부가 가장 우선해야 할 사업이다.

1919년은 대한민국이 최초로 선포된 해다. 이제 2019년이면 이 나라도 100년의 역사를 헤아리게 된다. 민간과 정부가 한 덩어리가 되어 우리 민족 전체의 영예를 담은 전당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을 세워야 한다. 이는 ‘민국’의 가치를 지켜낼 책무를 지고 있는 정부와 ‘민국’의 주인인 시민이 반드시 함께 추진해야 할 일이다. 어느 일방의 노력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다. ‘대한민국 100년’을 그대로 넘길 셈인가? 이는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맞을 또 다른 ‘대한민국 100년’의 토대를 놓는 일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준비를 서두르자.

이종찬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 사업회 부회장·전 국가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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