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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사람’의 자리 / 이유진

등록 2015-04-19 18:51수정 2015-04-19 22:01

지난 16일 귀갓길이었다. 세월호 참사 1주년 추모행사 때문에,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경찰버스의 ‘차벽’ 때문에 길이 막히자 누군가 말했다. “짜증 나서 살 수가 있나. 산 사람은 벌어먹고 살아야지.”

최근 발간된 인류학자 김현경의 책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를 보면, 이 사회는 결코 산 사람들로만 이뤄진 게 아니다. 유품을 고이 간직하듯,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에는 의례적인 관계가 지속되며 이는 “죽은 사람이 여전히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존재를 부인당하는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는 일, “사회 안에 빼앗길 수 없는 자리/장소를 마련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자리’를 내주는 일은 성원권과 관련이 있고, 국가는 누군가의 성원권을 철회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인 16일 이후 주말까지 국가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자리’를 박탈했다. 18일에는 사흘 동안 철야 연좌농성하던 유가족 등 21명을 포함해 그날 밤까지 100명의 시민이 연행되었다고 한다. 경찰 쪽이 집계한 집회 참석 인원은 8000여명, 경찰병력은 1만3700여명. 이 말이 맞다면 시민보다 1.7배가 넘는 수의 경찰이 동원된 셈이다.

지난 1년 동안 참사의 원인을 분석하며 발간된 책들은 하나같이 ‘세월호 이후’를 경고했다. 다섯달 동안 세월호 관련 1심 재판을 방청하고 분석한 <세월호를 기록하다>(미지북스)를 보면, 배 침몰의 직접적 계기는 운항 과실이었다. 이윤을 더 남기려는 증개축, 과적과 부실한 화물차 고박 관행이 문제를 증폭시켰고, 관련자들이 위험을 알면서도 누구 하나 상황을 바로잡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고 한다. 지은이 오준호씨는 “분명한 것은, 세월호 참사 역시 다음에 닥칠 그 무엇의 ‘징후’란 점”이라고 밝혔다. 누구나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한울아카데미)를 쓴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우리나라의 경우 재난 발생 위험성이 높은데도 그 원인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 사고가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공공성이 낮을수록 위험관리가 잘 되지 않는데, 지표 분석 결과 우리나라의 공공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 33개 회원국 가운데 꼴찌였다. 세계은행의 ‘세계가치관조사’ 통계 분석을 보면, 한국인은 “‘우리’보다는 ‘나’ 자신의 성공을 중요하게 여기고, 타인을 배려하기보다 나의 성공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지지하는 성향을 강하게 띤다고 했다. 공감과 연대를 외면한 채 각자도생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성의 위기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유가족 폄훼, 사실 왜곡 같은 ‘사회적 연대’의 붕괴가 잇따라 나타난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는 또다른 재난을 불러일으켜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이들은 경고했다.

참사 1주년을 맞아 추모단은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펼침막을 내걸었다. 그러나 희생자들이나 연행된 유가족들의 ‘사람’ 자격은 먹고사는 일 앞에 철회되었다. 목격자들의 말을 들으면, 유가족 연행을 막으려고 시민들은 경찰에게 눈물로 절박하게 호소했고 경찰 또한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하지만 ‘자리’는 치워졌고, 그 옆으로 사진 찍는 외국인들의 관광버스가 지나갔다고 한다.

이유진 문화부 기자
이유진 문화부 기자
“산 사람은 벌어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은 어깨 두드리는 위로가 아니라 경멸과 배제의 표현이다. 광화문은 ‘사회’의 공공장소가 아니라 누구라도 돈 낼 수 있는 사람의 것이 되었다. 국가를 대행한 공권력은 시위대에게 해산을 ‘명령’했다. 사회적 연대를 해체하는 이날의 물대포 앞에,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

이유진 문화부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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