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레 노스트룸’이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라틴어로 ‘우리의 바다’라는 뜻이다. 게임의 주인공은 로마, 카르타고, 그리스, 이집트, 바빌로니아 등 고대 서양을 주름잡던 다섯 나라다. 이들 나라가 교역, 건설, 전쟁을 되풀이하면서 세력을 키워간다. 아르테미스 신전이나 율리우스 카이사르 등 4종류 이상의 불가사의나 영웅을 먼저 만들어내는 사람이 승리한다.
‘우리의 바다’는 지중해다. 면적 250만㎢에 동서 길이 4000㎞에 이르는 지구촌 최대 내해다. 이 바다를 처음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이라고 부른 이들은 로마인이다. 실제로 전성기의 로마는 지중해를 둘러싼 유럽, 아프리카 북부, 중동 서부 지역을 모두 차지했다. 당시 이들에게 대서양은 마레 이그노툼(Mare Ignotum)이었다. ‘알 수 없는 바다’라는 뜻이다.
지중해는 중세 내내 ‘이슬람의 바다’였다. 이슬람 세력은 유럽 쪽 육지 일부를 제외하고 지중해 주변 지역 전체를 장악했다. 결국, 유럽 나라들은 ‘우리의 바다’를 되찾지 못한 채 서쪽으로 향해 대서양 시대를 열게 된다. 20세기에 ‘마레 노스트룸’을 국가 전략으로 내건 사람은 이탈리아의 파시즘 지도자 무솔리니다. 새 로마제국을 꿈꿨던 그의 시도는 불과 몇 해 만에 무참하게 실패한다.
2013년 10월 아프리카의 난민을 태우고 이탈리아로 향하던 배가 지중해에서 침몰해 360여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다. 그 직후 이탈리아는 유럽연합의 지원을 받아 해양 구조계획을 꾸린다. ‘마레 노스트룸’이라는 이름이 여기서 부활한다. 이 계획은 상당한 성과가 있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 많은 난민이 유럽행을 시도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올해 초 대체된 게 저예산의 연안 경비계획인 트리톤이다. 트리톤은 로마 신화에서 넵투누스의 아들인 바다의 신 이름이다. 800명가량 숨진 18일의 난민선 참사를 보면, 지중해는 누군가의 ‘우리의 바다’가 아니라 냉담한 바다의 신이 지배하는 곳인 듯하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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