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세계 최초로 승용차 운전면허를 얻었던 독일인 카를 벤츠는 자신이 만든 승용차에 가족을 태우고 191㎞에 이르는 마차 길을 달렸다. 일부는 기술 혁신에 환호했고, 일부는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악마라며 거부감을 감추지 않았다. 벤츠 스스로는 승용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1000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다. 자동차 도로가 없던 시절에 수시로 멈추는 승용차를 수리하면서 동시에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은 사회가 쉽게 육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헨리 포드는, “만약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다면 그들은 조금 더 빠른 말과 마차라고 답했을 것”이라며 혁신은 과거의 것을 단지 더 좋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고 했다. 저렴하고 빠른 마차를 원했던 시장의 요구와는 달리 헨리 포드는 1908년 ‘모델 티’라 불리는 자동차를 컨베이어벨트를 통해 대량생산했다. 그 후 ‘모델 티’는 약 1500만대가 판매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승용차와 화물차는 인류 사회의 모습을 바꾸었다.
공장, 시장 등 자동차로 연결되는 노동 현장 사이사이에는 도로가 놓였다. 노동자와 소비자를 위한 주차장이 만들어졌고, 사고를 줄이기 위한 신호등 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자동차보험 시장이 형성되었고 병원에는 교통사고 환자가 넘쳐났고, 자동차로 인한 환경오염은 여전히 인류의 숙제로 남아 있다. 자동차 산업은 정유, 주유, 철강, 신소재 등 연관 산업을 발전시키는 매개체 구실을 하고 있다. 한국,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 자동차 연관 산업은 해당 국민경제를 이끄는 주요 동력으로 성장했다. 지난 100여년 동안 자동차는 이를 창조한 벤츠와 포드의 상상력을 뛰어넘어 세상을 크게 변화시켰다.
앞으로 자동차는 어떻게 경제와 사회 질서를 뒤바꿀까? 연료 효율성이 높아지고 오염물질도 더 적게 배출하는 방향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는 조금 더 빠른 말과 마차일 뿐이다. 개인, 집단 그리고 물체의 이동에 있어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 커넥티드카, 무인자동차 등 자동차의 흐름을 통제하는 정보기술의 진화는 사고율을 낮출 수 있다. 사고율이 낮아지면 강력한 철강 소재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고, 자동차보험 산업은 존재 기반이 사라지는 운명을 마주할 것이다. 위험할 때 제동이나 방향전환 등으로 운전을 지원하는 기술은 사회윤리와 갈등한다. 다수의 유치원생이 탑승한 승합차와 운전자 1인이 승차한 자동차가 추돌할 위험에 직면한다면 기술은 어느 쪽에 이롭게 작동해야 할까? 자동차 생산기술의 진화로 무인공장이 증가한다면 현재 다수의 정규직은 이른바 디지털 일용직으로 전락할 것이다. 이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을 풀지 못한 한국 사회의 정치력에 간단치 않은 도전이다. 그렇다면 자동차에서 발생하는 데이터는 누구의 소유인가? 자동차 운영체제를 제공하는 구글과 애플의 데이터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이처럼 자동차 산업이 디지털 기술과 만나면 새롭고 다양한 가능성이 열리며 동시에 쉽지 않은 사회정책 과제가 쏟아진다.
축구 선수 한명은 경기 흐름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21명의 선수와 4명의 심판도 경기에 함께한다. 디지털 전환의 한가운데 위치한 삶과 노동의 경기장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행위자가 뛰고 있다. 이들 행위자의 영향력을 더욱 폭넓게 인정하고 이해할수록 우리는 미래를 좀더 잘 준비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미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미래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오늘’ 우리가 함께 결정하는 미래가 우리를 소유한다. 디지털 혁신은 특정 기업과 특정 정부부처의 과제가 아니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
강정수 ㈔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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