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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성형대국’의 의미 / 박권일

등록 2015-04-27 18:45

테드 창의 에스에프(SF) 단편소설 <외모지상주의에 관한 소고:다큐멘터리>는 ‘칼리그노시아’라는 테크놀로지를 둘러싼 논쟁을 흥미롭게 그려낸다. 칼리그노시아를 어떤 사람에게 장착한 뒤 켜면, 그 사람은 외모의 아름다움을 구분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그렇다고 물리적 차이를 인지하는 능력이 손상되는 건 아니다. 코가 높은 사람을 코가 높다고 인식하고, 코가 낮은 사람을 코가 낮다고 인식한다. 단지 예쁘고 잘생긴 얼굴과 평범한 얼굴 사이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뿐이다.

이 장치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는 심각한 외모지상주의(lookism) 때문이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은 진지하게 논의되며, 때로 제도적 수단을 통해 제재받기도 한다. 그러나 외모차별은 다른 차별 못지않게 만연해 있음에도 상대적으로 무시되거나 당연시되곤 한다. 사람들은 타인의 성적 매력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상대 외모에 따라 확연히 다르게 행동한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외모 가꾸기 경쟁을 점점 더 부추기고 있다.

소설에서 칼리그노시아 의무화를 찬성하는 쪽은 그것이 “사람을 성숙하게 만드는 일종의 보조수단”이며 “표면을 무시함으로써 더 깊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쪽은 칼리그노시아가 “자연스러운 차이”를 인위적으로 억압하는 조치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외모차별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긴 하지만 저런 기술적 해결책은 “눈가림”일 뿐이므로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10년 전 저 소설을 읽었을 때, ‘한국은 이미 다른 해결책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외모에 대한 인식을 평평하게 만드는 기술적 해결책이 아니라 외모를 상향평준화시키는 ‘수술적 해결책’, 이른바 “세계 최대의 성형대국”이라는 프로젝트 말이다. 어마어마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고 자살을 부를 정도로 개인을 억압하면서, 한국 사회는 지극히 한국적인 방식으로 외모지상주의를 ‘극복’해왔다.

물론 한국에도 “내면을 가꾸기보다 외모에만 집착한다”고 개탄하며 ‘성형대국’ 타이틀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실에서 칼리그노시아가 출시되면 적극적으로 사용할 법한 분들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두 가지 의문이 생긴다. 먼저, 본질과 현상이라는 오래된 이분법에 내면과 외모를 끼워 넣은 듯한 저런 인식이 타당하냐는 것이다. 내면 혹은 지적 능력은 너무 신비화되고 낭만화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스포츠 선수의 도핑은 매우 엄격하게 처벌받는 데 비해 지식 노동자나 학생의 브레인 도핑, 즉 지적 활동을 항진시키는 각종 약물에 대해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다.

둘째는 한국인이 실제로 내면을 가꾸는 데 그렇게 소홀한가라는 의문이다. 오히려 반대 아닐까. 한국인처럼 자기 내면을 살뜰하게 돌보는 사람들도 세계적으로 드물다. 어마어마하게 팔려나갔고 여전히 팔려나가는 중인 자기계발, 힐링, 명상 서적들, 인산인해를 이루는 “인문학 멘토”의 토크콘서트를 보라. 점술, 연애상담, 픽업 아티스트 등 갖가지 종류의 컨설팅 사업까지 더해져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약한 자아에 관념적 보형물을 집어넣어 주는 이 비즈니스는, 말하자면 ‘자아성형 산업’이다. 한국은 외모와 내면 모두에서, 명실상부 성형대국인 셈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박권일 칼럼니스트
외모성형과 자아성형, 즉 자기계발적 해법에 몰두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체제 모순에 대한 정치적·제도적 해법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만약 자기계발적 해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널리 공유되면 어떻게 될까. 혁명이 일어날까?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상상적 해법’이 확산된다. 내부의 타자를 희생양으로 만들어 증오와 혐오를 쏟아내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박권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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