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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지금은 ‘청년시대’② / 조계완

등록 2015-05-03 18:42

“기업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아낀 비용으로 청년을 고용하면 기업에 손해가 나지 않도록 재정을 지원해 주겠다.” 기획재정부가 요즘 내놓은 청년실업 대책이다. 인센티브를 동원해 개별 기업의 행동을 청년고용 쪽으로 유도하겠다는 심산이다. 사실 청년고용은 외피일 뿐이고 목적은 임금피크제 확산에 있다는 심증이 짙은데, 상을 주든 벌을 주든 “경제주체는 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시장경제원리에 충실한 정책이다.

한 해 2550만명(2015년 3월 취업자)이 창출해내는 총부가가치 1485조원(2014년)의 생산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는 ‘어두운 고용’의 젊은이들이 한국 경제를 덮치면서 전염병처럼 확산되고 있다. 청년실업은 시장논리를 거스르는 ‘사회적’ 접근의 대응을 도모하지 않으면 암울한 나날이 지속될 공산이 크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항상 더 풍부하다는 건 삶의 경륜이 가르치는 바다. 청년일자리 함수는 온갖 변수와 요인이 개입·관통하는 고차방정식이다. 몇 가지로 분해하면, 돌이키기 어려운 저성장 기조와 각종 경제정책, 노동절약적 숙련편향 산업구조라는 기술적 요인, 피하기 어려운 세계화 조류, 노동조합 같은 제도적 요인들이 다양한 층위에 뒤엉키며 중첩돼 있다. 역설적이게도 기업이 고용을 미룬다고 발표하면 즉각 주가가 오를 정도로 기이한 경제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업이란 무엇인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널드 코스가 27살(1937년)에 던졌던 이 질문은 조직·집단·계급·계층·위계·권력 개념은 아예 들어설 자리가 없는 “평등한 개인들의 교환거래”로 운영되는 시장경제에 왜 기업‘조직’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경이로운 일갈이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나라 27살 젊은이들이 제기하는 똑같은 물음은 박탈감과 좌절의 비극적 표현일 뿐이다. 기업은 청년고용을 회피하고, 기업 이사회 구성원들은 선출되지도 국가자격시험을 통과하지도 않았지만 고용과 투자를 통해 사회경제적 권력을 행사하고 경제를 지휘한다. 기업경영자들이 배운 경제교과서는 “모든 것이 언제나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설파한다. 도출되는 결론은 현실의 청년고용 수준도 ‘최적’이라는 보수적 이데올로기로 이어진다.

자본주의 경제는 일정한 성장을 성취한 단계에 들어서면 경제보다 ‘사회’ 영역이 점점 더 중요해진다. 청년들이 통과하고 있는 불임의 계절은 국내총생산에 참여하지 못하는 ‘생산 손실’을 넘어 마음에 깊게 그어진 사회적 상처를 남긴다.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일축해버리는 빈곤한 대책의 바탕엔 사회적 처방의 부재가 깔려 있다. “오직 성장만이 근본 대책이다.” 자원 재분배를 통해 시장을 교정하는 제도를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수립·실행할 수 있는 권능을 지닌 경제정책 담당자들이 내뱉는 이 고약한 말도 청년에겐 아무런 위안도 될 수 없다.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을 고시 준비할 때 암기만 하고 가슴으로 체득하고 깨닫지는 못한 것일까?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다. 임금피크제 같은 사실상의 읍소는 해법이 될 수 없다. 주도면밀한 분석과 합리적 확신에 기초해 나날이 악화하는 청년실업에 진지하고 정교하게 개입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대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소득불평등이 과거에 진보개혁가들이 요구한 것보다 훨씬 더 쉽게 또 광범하게 용인되고 있는 것처럼, 청년실업도 점차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방치되는 경로를 밟게 될지 모른다. 1분기 영업이익 6조원대의 삼성전자처럼 번영을 구가해온 우리 경제와 기업은, 때 묻지 않은 발랄한 연애도 포기한 채 비탄 속에 ‘때 묻은’ 취업 고뇌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겸손해야 하는 건 아닐까? 청년 노동권이 우리 사회와 경제에서 새로운 용어와 가치 개념으로 절박하게 말해져야 할 때다.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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