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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동북아 삼국지 / 박병수

등록 2015-05-10 18:54

갑자기 한국 외교가 위기라는 목소리가 높다. 하루아침에 국제무대의 외톨이가 된 것처럼 느껴졌으니, 왜 안 그러겠는가. 그동안 동북아의 ‘왕따’는 일본인 줄 알았다.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등으로 일본과 대립하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동맹국 미국도 아베 신조 총리의 수정주의 역사관에 비판적이지 않은가.

미국에서 과거사 반성을 사실상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삼은 한국 정부의 입장을 불편해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 편’이라는 대세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외교당국은 ‘과거’보다 ‘미래’에 무게를 둬야 한다며 한국을 은근히 겨냥한 미국 고위 인사들의 불만이 언론을 타면 “진의가 왜곡됐다”며 물타기에 바빴다.

그런데 아베 총리가 지난달 중-일 정상회담과 미-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면서 상황이 갑자기 달라졌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이번에도 아베 총리에게 ‘과거사 직시’를 경고하는 말을 잊진 않았지만, 지난해 11월과 달리 냉랭한 표정을 짓진 않았다. 미국으로 건너간 아베 총리는 위안부 문제 등에 사과하지 않았으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환대를 받고 상·하원 합동연설에서도 박수갈채를 받았다.

우리는 어떤가. 대일 ‘역사연대’까지 거론되던 중국과는 사드 배치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고, ‘한 치의 빛 샐 틈도 없는 최상의 동맹관계’라는 미국으로부터는 한-일 관계 개선의 압력이 커지고 있다.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일본은 미국의 맹방임이 재확인됐고 한국은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 가능성을 우려하는 처지가 됐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군사적 대립에서 한발도 못 나가고 있는 형국이다.

국가이익이 다양한 변수로 변주되는 외교무대에서 원칙만 앞세우고 유연성을 보이지 못한 결과 아닐까 싶다. 외교는 상대가 있는 것이니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별다른 현실적 대안 없이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 정상회담 없다’ 같은 완고한 원칙에 매몰돼서는 다양한 국제사회의 이해관계가 빚어내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정부의 대북정책은 최근 유연해진 느낌이다. 정부는 2010년 5·24 조치 이후 처음으로 지난달 27일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지원을 승인했다. 6·15선언 15돌 공동행사를 위한 남북 접촉도 승인해, 6·15 남북 공동행사가 7년 만에 서울에서 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부는 6자회담과 관련해서도 북에 “조건 없는 탐색적 대화”를 제안하는 등 대화 재개의 문턱을 낮췄다.

남북관계는 분단된 현실에서 우리 대외정책의 가늠자 구실을 해왔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 강국에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줄어든다. 나빠지면 북한 문제에 외교 역량을 소모해야 한다. 최근 미-중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 사드 배치도, 미국의 한-일 관계 개선 압력도 결국 북한 문제로 수렴된다. 그래서 정부의 조심스러운 변화가 반갑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늘 어렵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도 남북관계는 여러차례 롤러코스터를 탔다. 북한은 이번에도 6·15 남북공동행사 합의 뒤 곧바로 남을 위협하는 돌출 행동을 보였다. 북한은 8일과 9일 잇따라 “남쪽 함정이 서해 해상분계선을 침범했다”며 조준사격을 경고하는 통지문을 보냈다. 또 잠수함의 탄도탄 수중시험발사 성공을 공개하고, KN-01 함대함 미사일도 발사했다. 북한의 의도를 속단할 순 없지만, 도발 시점이 묘한 뒷맛을 남긴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군사 도발에는 똑 부러지는 대응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장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즉응적으로 일희일비할 일은 아니다. 분단 70년 동안 쌓인 두터운 불신과 반목의 장벽을 뚫기 위해서는 장기적·전략적 접근밖에 없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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