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시드니 폴락 감독의 1981년 작품 <선택>이다. 수사기관이 흘린 정보를 그대로 보도해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보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인데 원제가 ‘앱슨스 오브 맬리스’, 즉 ‘악의의 부재’다. 미국은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하려면 검찰이 구체적인 악의를 입증해야 한다. 제목은 “악의만 없으면 무책임하게 보도해도 되느냐”는 문제를 제기하지만, 내가 느낀 건 역설적으로 ‘언론 자유에 대한 관용이 얼마나 크면 저런 제목이 나올까’ 하는 부러움이었다.
최근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재판을 방청했고 판결문도 봤다. 판결문엔 많이 보던 판례가 인용돼 있었다.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 공표죄에서) 피고인이 적시한 구체적 사실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시간적, 물리적으로 사회통념상 가능하였다고 인정됨에도 그러한 확인의 노력을 하지 않은 채 그 사실의 적시에 적극적으로 나아간 경우에는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 … (피고인이 제기한) 의혹이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는 비록 사후에 그 의혹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위해 이를 벌할 수 없다.”
검찰에게 악의의 입증을 요구하는 미국과는 확실히 달라 보인다. 이런 판례에서 처벌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툼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빼고 이 사건을 재구성해 보자. 이름난 탐사보도 전문 기자가 상대 후보(고승덕)가 미국 영주권을 가지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트위터에 올려 빠르게 퍼진다.(이 기자는 얼마 뒤 전화통화에서 상대 후보로부터 영주권이 있다는 말을 직접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상대 후보는 미국 영주권을 쉽게 취득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영주권이 있음을 당사자 아닌 제3자가 증명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러면 가만히 있는 게 능사일까? 후보 검증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해명을 요구하면 안 될까?
판결문의 답은 ‘노’였다. 확인의 노력이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이유가 부족하다며 당선무효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판결문엔 “피고인이 교육감 후보자의 영주권 보유 여부는 공적 사항으로 청문절차를 거치지 않는 선출직의 경우 선거과정에서의 적격검증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대방 후보자에게 객관적인 소명자료의 제시를 요구한 것이어서 그 경위에 참작할 점이 있다”고 썼다.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이 사건 범행이 고승덕의 지지율에 나쁜 영향을 준 것은 인정되나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해 고승덕이 낙선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당선무효라는 극형에 적합한 표현은 아니다. 거꾸로 이 표현은 선거 문화와 선거 관련 법, 판례 사이의 괴리를 드러내는 것 같지 않나.
앞으로도 공직선거의 후보들은 ‘얼마만큼 확인하고 얼마만큼 진실이라고 믿으면’ 의혹을 제기할지를 두고 계속 줄타기를 할 거다. 하지만 기존 판례나 이번 판결이나 그 줄타기의 기준을 분명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실제 선거문화와 법문화 사이의 괴리가 점점 커져가는 듯하다. 그 와중에 검찰의 편파적 기소는 논란을 배가시킨다.
이번 재판 과정에서 귀가 솔깃했던 건, 다음과 같은 변호인의 말이었다. 지난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선거 과정에서의 허위사실 공표를 형사처벌하도록 한 오하이오 주법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단다. 그 판결문의 일부이다. “문제는 정치적 표현이 진실인가 그렇지 않은가를 판단할 수 있는 분명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우리는 정부가 그것을 판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정부가 자신을 비판하는 자를 처벌하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민주주의에서는 투표권자가 그것을 판단해야 한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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