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작은 일에 분노하지?”
한달 전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이름 논란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경기도 수원시가 현대산업개발의 아파트 브랜드인 ‘아이파크’를 시립미술관 이름에 넣으려고 하자 수원지역 문화예술인과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문화유산인 화성행궁 앞에는 오는 10월 개관하는 수원시립미술관 공사가 한창이다. 현대산업개발은 300억원을 들여 미술관을 지어 수원시에 기부채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 수원시는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바람직하다”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이란 이름을 발표했다.
애초 내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이름 논란에 시큰둥했던 이유는 대략 두가지다. 먼저 “세월호 참사나 성완종 리스트 같은 현안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었다. 솔직히 수원시립미술관 이름에 ‘아이파크’를 넣든 빼든 무슨 문제일까 싶었다.
다음으로 건물 명칭 등에 기업이나 개인 이름이 붙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오래전부터 대학 등은 기업이 낸 돈으로 지은 건물에는 해당 기업 창업주나 기업 이름을 붙이고 있다. 많은 이들이 시설이나 건물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권리인 명명권(naming rights) 판매를 예산 절감과 사회적 기여로 본다. 공공부문과 기업의 상생모델로 여긴다.
그런데 나는 지난 주말부터 이런 생각을 돌이켜보고 있다. 수미네의 ‘100시간의 무한도전’이 계기였다. 수미네는 ‘수원공공미술관 이름 바로잡기 시민네트워크’의 준말이다.
수미네는 지난 17일 오후 2시부터 수원시의회 본회의가 진행되는 21일 오후 6시까지 화성행궁 앞에서 ‘100시간의 무한도전’을 펼치고 있다. 수미네는 비장하고 무거운 항의방식 대신 유쾌한 놀이판을 펼치고 있다. 이를테면 ‘도시락 싸 가지고 다니면서 요상한 이름 말립시다’라며 점심, 저녁 도시락 파티를 하는 식이다.
지난 5월14일 수원시의회 문화복지교육위원회에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관리 및 운영조례’가 통과돼 21일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수미네는 이 조례가 통과될 경우 ‘특정 기업의 브랜드가 공공미술관의 명칭으로 쓰이는 세계 첫 사례이고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이름 논란은 사소한 지역 이슈 같지만, 짚어봐야 할 중요한 대목이 있다. 공공미술관이 명명권 판매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다. 문화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현재 국내 179개 공립박물관·미술관 가운데 특정 기업의 이름이나 브랜드를 사용한 곳은 한곳도 없다는 게 배봉균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의 설명이다. 금호미술관, 호암미술관,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등 기업명이나 창업자 호가 들어간 미술관들이 있지만, 설립에서 운영까지 해당 기업이 책임지는 사립미술관이다.
특히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처럼 기부한 기업 이름도 아닌 특정 상품 브랜드가 들어간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수미네 쪽은 앞으로 농심이 기부하면 ‘수원시립새우깡미술관’이 되고 하이트진로가 지어주면 ‘수원시립참이슬미술관’이 되느냐고 수원시를 꼬집고 있다.
수원시가 시립미술관 이름에 아이파크를 꼭 넣어야 한다면, 시민들에게 설명하고 설득하는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공론화 과정에서 수미네 쪽 주장뿐만 아니라 ‘300억원을 기부한 현대산업개발에 명칭사용권을 줄 수 있지 않으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수원시는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명명권 관련 정책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 의견을 먼저 물어야 한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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