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국, 유럽연합이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시작했다. 현재 세계 디지털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쪽은 미국 인터넷 기업들이다. 유럽연합 28개 나라에서 구글의 검색시장 점유율은 평균 90퍼센트를 상회한다. 검색시장을 장악한 만큼 구글은 유럽의 디지털 광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페이스북도 유럽에서 에스엔에스(SNS) 서비스 시장을 싹쓸이했고, 구글의 유튜브와 함께 유럽 모바일 광고 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유럽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아마존의 시장 점유율은 40~50퍼센트 수준이다. 아마존은 여기에 더 나아가 유럽 클라우드 시장을 60퍼센트 이상 장악하고 있다. 이들 세 미국기업은 절세기법을 이용하여 유럽 각국에 사실상 법인세를 내고 있지 않다. 막대한 돈을 벌고 세금은 내지 않는 꼴이다. 유럽 모바일 메시징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와츠앱은 최근 데이터 기반 전화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유럽 이동통신사업자를 궁지로 몰고 있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의 유럽 공략에 맞서 프랑스 미디어 기업 비방디는 독일 미디어 기업과 연합전선을 구축했지만 이 전선도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유럽을 평정한 미국 인터넷 기업들은 공격 전선을 아시아로 확장했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에서 승기를 잡기 시작했고, 아마존과 넷플릭스는 일본과 한국을 거쳐 중국에 이르는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공세에 맞서는 중국 인터넷 기업의 결기가 예사롭지 않다.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의 80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는 알리바바는 전선을 세계시장으로 확대하고 있다. 2014년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하면서 약 219억달러의 자금을 수혈한 알리바바는 중국 시장으로 수출을 목표로 하는 전세계 기업의 중개자를 자처하고 있다. 아마존, 이베이와 경쟁하는 알리바바는 스스로를 데이터 기업으로 정의하며 클라우드, 전자지불체계 시장에서 미국 인터넷 기업의 패권에 도전하고 있다. 기업 가치 면에서도 알리바바는 구글, 페이스북과 어깨를 겨루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알리바바만 세계 경제질서의 디지털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아니다. 게임 기업으로 시작한 텐센트는 위챗이라는 메시징 서비스로 아시아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모바일 경제생태계를 집어삼킬 기세다. 중국의 구글로 평가받는 바이두 또한 자동주행 자동차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등 중국을 넘어 세계 디지털 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인터넷 기업이 세계 경제의 판을 흔드는 모습을 지켜만 보던 유럽 정치권은 지난 5월6일 ‘유럽 디지털 단일시장’이라는 정책을 선보였다. 전통적인 재화, 서비스, 자본, 노동력의 유럽 단일시장에 디지털 영역을 추가했지만 그 속내는 보호주의다. 미국과 중국처럼 디지털 시장 크기를 키워 유럽 인터넷 기업의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디지털 경제에 대한 규제정책 재정비를 빌미로 미국 인터넷 기업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유럽 디지털 단일시장 전략의 성공 여부를 떠나 유럽과 미국의 디지털 무역마찰이 예고되는 지점이다. 유럽 인터넷 기업 육성을 위해서라면 미국 정부와 갈등을 피하지 않겠다는 유럽 정치권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헨리 키신저는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국가 중심의 세계 질서가 위기에 직면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경제 질서의 변동에 정치권은 반작용할 수밖에 없고, 정치권의 반작용은 때론 국가간 또는 경제블록간 갈등으로 이어진다. 인터넷 기업을 매개로 벌어지고 있는 세계 경제질서의 변동에 한국 정치권은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지, 아니 답을 준비는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
강정수 ㈔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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