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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미안함과 후련함

등록 2015-05-27 19:01수정 2015-05-27 19:01

렌터카를 느릿느릿 운전하며 작은 마을을 굽이굽이 돌아다녔다. 돌담 사이로 삐죽하게 자라나는 푸른 고사리잎도 구경하고 나처럼 어슬렁대는 동네 개들도 구경을 하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모퉁이를 돌자, 까만 잠수복을 입은 해녀들이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였다. 망시리(해녀들이 채취한 해산물을 담는 그물주머니) 안에 든 것이 궁금해서 더 천천히 운전을 했다. 고개를 빼고 쳐다보았다. 해녀 한 사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구경났냐며, 쳐다보지 말고 빨리 지나가라 다그쳤다. 당황한 마음에 얼른 골목을 빠져나왔다. 민망했고 미안했다. 관광객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시달려왔을지를 생각하니 두고두고 찜찜했다. 경주에서 살던 코흘리개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행렬을 이루며 지나가던 관광객들 중 하나가 길가에 쪼그려 앉은 내게 다가왔다. 귀엽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삽시간에 십여명이 내 머리를 차례차례 쓰다듬기도 했다. 이름을 물었고 나이를 물었다. 이름도 나이도 말해주기 싫었다. 아무렇지 않게 내 머리를 쓰다듬던 손길이 싫었다. 까맣고 꾀죄죄한 꼬마였던 내게 하얗고 깔끔한 그들이 해주는 귀엽다는 말도 싫기만 했다. 주인인 양 골목을 장악한 채 시끄럽게 지나가던 그들은 동네 꼬마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긴 행렬이 지나가면 잠시 골목을 차지해 잠깐 놀다 다시 비켜야 했다. 그래서일까. 해녀들에게 욕을 먹었는데, 묘하게 후련했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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