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 대기 의자에 앉아 티브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영남의 대작 사건에 대한 법원의 판결 뉴스가 나왔고, 곧이어 외국인 노동자에게 밀린 임금을 2만여개의 동전으로 지급한 건설업자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자,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한탄처럼 “말세야 말세” 하고 읊조렸다. ‘말세’라는 말을 귀에 담고서 한참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오래오래 묵인되어왔던 폭로와 폭력들이 비로소 이슈의 모습으로 민낯을 드러내는 나날들. 섬마을 여교사 성폭력 사건에서부터 구의역 청년 노동자의 사망 사건에 이르기까지. 직장 상사로부터 받은 폭력과 남자가 여자에게 행한 폭력과 군대와 학교에서 일어난 폭력들. 약자와 소수자에게 마치 관습인 양 행해지던 폭력들이 폭로되는 나날들. 경악스러운 사건 사고들이 하나하나 우리에게 도착할 때마다 ‘말세’ 같다는 한탄의 밑바닥에서는 이제부터 새로운 관습들이 시작되고 있다는 희망도 고개를 함께 든다. 시작이 시작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이런 소식들이 하나하나 폭로되고 있어 다
행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강남역 사건 이후, 남자들의 말품새가 이미 조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게 벌써 피부로 느껴진다 하면 너무 천진한 것일까. 해묵고 버거웠고 부당했던 폭력들이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하고,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당연하게 당당하게 행했던 자들의 자기검열이 시작되는 일. 법과 법규가 우리의 시작을 자주 방해하지만 출발조차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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