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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서면조사 / 여현호

등록 2015-05-31 18:45

‘3급 수사’란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내는 신문 방법을 뜻하는 미국 경찰의 오랜 은어다. 고무호스, 곤봉, 야경봉 등을 휘두르거나 묶여 있는 피의자를 주먹으로 때려 육체적 고통과 함께 심리적 강박을 가하는 저급한 수사 방식이다. 20세기 초까지 계속되던 ‘3급 수사’는 1931년 경찰의 고문과 폭력 실태를 고발하는 위커셤 보고서가 나오고 거센 비난이 제기되면서 급격히 줄었다. 대신 좀 더 과학적이라는 ‘심리적 신문’ 기법이 도입된다. 거짓말탐지기, 컴퓨터 음성스트레스 분석기 등이 수사에 쓰이고, 피의자신문 훈련지침서 등이 만들어졌다. 이들 기기와 지침이 실제 과학적이라는 근거는 별로 없다. 과학적 수사라지만 ‘3급 수사’와 마찬가지로 어떻게든 자백을 받아내는 것이 목표였고, 밀실에서 강요와 기망, 심리 조종 등을 통해 압박을 가하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같았다.

요즘 많이 쓰인다는 범죄 심리학적 신문기법은 신문 대상자의 신체적 반응을 예의 주시하고 다양한 대화 기법을 총동원해 숨겨진 진심을 찾아내려 한다. 진술자 기억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자유롭게 진술하도록 유도하는 ‘인지신문기법’, 다른 질문을 하다가 갑자기 “왜 죽였어?” 따위 핵심 질문을 공격적으로 던져 반응을 읽어내는 ‘리드신문기법’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적 신문기법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국인의 공통적인 심리인 체면, 우리라는 의식, 정(情) 등을 동원한 신문기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퇴로 끊기, 잘못된 기억 바로잡기, 허 찌르기와 순서 뒤집기 등의 신문기법도 있고, 물증이 없는 뇌물 사건에서 특히 유용하다는 상세한 질문 던지기 기법도 있다.

이런 기법들은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신문을 할 때에야 가능한 일이다. 서면으로 묻고 답한다면 의심스러운 게 있어도 바로 추궁할 수 없다. 그래서 서면조사는 불기소나 무혐의 결정을 내리기 위한 요식행위로 받아들여진다.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 중 6명에게 보냈다는 서면질의가 사실상 ‘수사 포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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