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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지금은 ‘청년시대’ ③ / 조계완

등록 2015-05-31 18:49

통계청이 발표한 월별 청년(15~29살) 실업률은 1999년 7월(11.5%) 정점에 이른 뒤, 2월만 보면 2000년(10.1%), 2004년(9.1%), 2010년(10.0%), 2015년(11.1%)이다. 외견상으론 ‘청년실업’이 경제용어로 근래에 불쑥 등장한 듯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15년 넘게 지속중이란 사실을 우리는 가끔 잊고 있다. 깊게 파인 홈처럼 갈수록 공고화하다가 급기야 ‘내파’하는 양상에 이른 듯한 형국이다.

그사이 정치 담당 세력이 세번 바뀌었다. 돌이켜보면 청년실업이 구조화하는 ‘이행의 계곡’을 거치는 동안 이를 정조준하는 어떤 정치적·정책적 대응이 있었는지,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이념과 강령으로 구획되는 정치집단들이 표면상으론 얼핏 경쟁적으로 비치긴 하지만, 그 차이를 불문하고 모두 ‘저성장 추세’를 청년실업 요인으로 지목하기만 했을 뿐 지향(정책 기조)이든 실질(인적·물적 자원 투입)에서든 성공은커녕 실패 경험조차 못했다. 자원과 역량을 동원한 ‘정치적 개입’을 통해 일자리 배분을 교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청년실업을 포함해 어떤 현상이든 통과하고 있는 도중에는 추세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 잘 분간하기 어렵다. 하지만 경제전문가들의 분석은 설명력이 떨어지는 일이 흔하다. 예컨대 주택 거품의 형성·붕괴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미래 주택자산가격을 자못 과학적으로 예측했다고 자부했으나 의아하게도 주택 구입에 쓴 돈의 출처가 자기 돈인지 남의 돈인지 그 간명한 측면에는 거의 관심을 쏟지 않았다. 극적인 금융위기 폭발에 남의 돈(은행대출 빚)이란 사정이 깔려 있었다는 건 우리가 경험한 바다. “매일 새벽 집 뒷문에 우유병을 배달하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고민해야 하는 부류가 사회연구자와 정치가라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면 될 뿐 (청년이든) 누가 배달하든 무슨 상관인가”라고 설파하는 쪽은 시장과 기업, 그리고 경제전문가다. 청년고용을 늘리려면 더 멀리 내다보는 ‘인내하는 자본’이 필요하다. 요컨대, 그러한 기업가정신 결핍을 탓하기만 하는 무기력한 대응은 정치적 무능일 뿐이란 얘기다.

청년실업을 확대재생산하는 ‘경제구조’를 혁파하고, “불에 녹지않는 동전” 같은 지속가능한 청년고용 체제를 만드는 게 정치의 역할 아닌가? 고용은 윤리를 넘어 삶의 요청이다. 실업의 사회경제적 손실은 생산에만 측정·국한되지 않는다. 노동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신진대사 과정으로, 사람은 이를 통해 외부를 바꿔가며 동시에 자신의 인간 본성을 변화시킨다. 정치가 개입해야 할 지점과 근거가 여기다.

정치가도 정당 취업에 성공한 월급쟁이다. 국회에서 극렬하게 몸싸움하는 풍경이 항상 볼썽사나운 건 아니다. 정치는 여러 계층의 집단적 이해를 대표하고, 갈등이 집적된 형태로 표출·충돌하는 장소다. 불온하거나 수양이 덜된 자로 몰릴지 모르나, 때론 싸우지 않는 게 자기 이익을 대변해줄 것으로 믿고 표를 던져준 유권자를 배반한 셈이라고 나는 간혹 생각한다.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무릇 선거에서 우리는 실천적 용기와 행동의 삶에, 또 그 반대편의 삶에 종이돌멩이(표)를 던지며 자기 의사를 표출한다. 그러나 청년처럼 경제적 약자들이야말로 어쩌면 정치 영역에서 더 불리한 처지에 놓여 감내만 하고 있다. 그러기에 청년실업 처방엔 경제 분석뿐 아니라 정치적 용기가 더 필요하다. 정치를 환멸로 마주하는 청년들 앞에서 정치가는 ‘겸손이 낯선’, 자기 스스로 의심에 시달려야 할 기성세대다. 청년의 구원투수로 나서 ‘아이디어 싸움’을 벌이는 정치라면 아무리 과잉이라도 좋다. 그것이 ‘소명으로서의 직업 정치’ 아닐까?

조계완 경제부 산업2팀장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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