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세대간 이간질이 또 시작됐다. 이번에는 일자리를 놓고 장년층과 청년층을 ‘의자놀이’에 몰아넣고 있다. 아버지 세대가 지금 있는 일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으면 아들딸들이 취업의 꿈과 희망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내년부터 종업원 300명 이상 사업장에 한해 정년연장 의무화를 시행함에 따라 이른바 ‘청년 고용 절벽’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공기업과 대기업의 임금피크제이다. 장년층을 위한 정년연장의 충격이 청년 취업난을 초래하는 만큼 임금피크제로 기업 부담을 덜어주는 대신 청년 고용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취업규칙 변경지침을 마련해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려는 모양이다. 노사 간 단체협상으로 결정해야 할 임금피크제를 고용부의 행정해석 권한으로 강제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노동계 반발을 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반발을 청년들의 취업난을 외면하는 조직 노동자의 기득권 챙기기로 몰아붙인다. 왜곡이며 모략이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청년 고용 절벽’이란 현상은 미래의 우려가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 진행형이다. 경제가 성장을 해도 청년층 일자리는 계속 줄고 있다. 2008년 이후 지난해까지 만 15~29살 연령층의 취업자 수는 약 420만에서 390만으로 30만가량 줄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서 청년 고용지표는 더욱 나빠졌다. 2012년 7.2%이던 청년 실업률이 지난해 9.0%로 높아졌다. 올해 4월에는 10.2%를 기록해 4월 수치로만 따지면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9년 이후 최고치다. 고용의 질도 최악이다. 어렵게 취업을 한 청년들도 3명 중 1명꼴로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정년연장 의무화까지 시행하면 청년 실업에 더욱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다. 다만 한정된 일자리에서만 그렇다. 대기업과 공기업 정도다. 전체 일자리의 9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는 상관없는 얘기다. 대기업의 임금피크제가 청년 고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지 않다. 정년연장 혜택을 보는 장년층의 임금을 동결하더라도 민간기업에서 아낀 인건비를 청년 고용에 쓴다는 보장이 없다. 정부가 강제할 수단도 없다.
고용은 노동시장에서 노동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변화에 따라 결정된다. 노동에 대한 수요, 즉 일자리의 증감은 기업의 투자와 생산활동의 결과이다. 국민경제 전체로 볼 때는 성장잠재력이 고용의 결정적인 변수다. 그런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에는 미약하나마 회복하는 듯하더니 올해 들어선 다시 하방 위험이 커졌다. 갈수록 악화하는 청년 실업난도 그런 위험 가운데 하나이다. 장년층의 대규모 은퇴에 따른 노후 불안과 소비 여력의 축소 또한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청년 고용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은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엄격히 말하면 정년연장은 청년 고용 촉진과는 별개의 과제이다. 정년연장 의무화 법안의 정식 명칭은 ‘고용상 연령차별 금지 및 고령자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다. 연령에 따른 고용 차별을 금지하자는 게 기본 취지이다. 또 급격한 인구고령화에 따른 산업인력 부족 현상을 해소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법 취지를 그대로 살린다면 정년연장을 둘러싸고 노정, 노사 간에 갈등이 벌어질 까닭이 없다. 정년연장이든 청년 고용 촉진이든 법대로, 원칙대로 하면 된다. 장년층의 고용 안정과 청년층의 고용 창출은 선택 사항이 아니다.
박순빈 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박순빈 연구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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