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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한반도의 일본군 유적과 등록문화재 / 신주백

등록 2015-06-01 18:52

‘메이지(명치) 산업혁명 유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문제를 놓고 한·중·일 3국 사이에 뜨거운 외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일본은 서양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근대산업사회에 진입한 자신의 역사를 증명하는 귀중한 자산이라며 23개 시설을 유산으로 신청했다. 이에 한국은 7개 시설에 5만7000여명의 한국인이 강제로 동원된 사실을 들어 일본의 움직임을 견제해 왔다.

지난 5월23일에 열린 도쿄회담에서도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일본은 23개 시설이 “한국병합 이전에 산업화에 성공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으로 다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시기가 다르다는 일본의 반론에 대해 한국은 강제동원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을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이 일본의 등재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는 폭은 넓다. 7개 산업시설의 등재 자체를 반대할 수도 있고, 아니면 28일부터 열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문에 강제동원을 명시하거나 관련 시설에 기념비를 설치하는 등 타협할 수도 있다. 역사의 진실을 고수하면서도 일본인의 문화유산임을 존중한다는 점에서는 후자의 방안이 매우 적절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하여 짚어봐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이 문제삼고 있는 산업시설은 ‘부(負)의 유산’에 해당된다. 한국에도 일본의 침략전쟁이나 식민지 지배와 관련된 부정적인 유산이 매우 많다.

우리는 흔히 부정적 유산과 관련된 기념물로 한국은행 본관처럼 도심에 남아 있는 건축물을 떠올린다. 이보다 훨씬 많은 유산이 일본군 관련 시설물과 시설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일본군 관련 유산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 서울 용산의 미군기지다. 용산 미군기지에 있는 일본군 시설은 군 차원을 넘어 한반도에서의 식민과 냉전, 전쟁과 분단을 압축적으로 말해준다.

이와 비슷한 메시지를 던지는 일본군 관련 유적은 전국에 흩어져 있다.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울산과 같은 광역시뿐만 아니라 제주도와 남서해안을 따라 수많은 시설이 남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방치하거나 관리를 명목으로 일반인의 접근 자체를 막아 놓은 경우가 많다.

그나마 한국군과 미군이 사용하고 있어 보존상태가 양호한 시설도 있다. 동굴을 포도 저장고로 활용하거나, 가덕도처럼 시설지를 관광자원화하여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곳은 문화재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은 경우다. 지역 주민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는 역사와 문화유산이란 측면도 간과되어 있다. 체계적인 정밀조사를 바탕으로 역사화하지 않은 채 경제적으로만 접근한 것이다.

실용적인 접근은 일본군 군사유적과 지방사 교육의 연계를 어렵게 한다. 역사성을 제거함으로써 반성적인 성찰도 어렵게 한다. 또 이런 접근을 통해선 반일 담론에만 갇히지 않고 평화와 공존을 생각하는 싹이 돋아날 수 없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멸실과 훼손의 우려가 있는 일본군 시설 가운데 지방의 역사와 문화적 배경이 될 수 있는 것은 등록문화재로 관리해야 한다. 일본군 시설은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지배한 일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소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부정적인 성격의 유산일지라도 세계유산으로 등록할 수 있다는 유네스코의 취지와도 일치한다. 이렇게 접근해야 일본에는 자격 요건을 갖추도록 요구하면서, 정작 우리는 ‘부의 유산’을 등록문화재로 만드는 데 주저하는 모순된 태도를 극복할 수 있다. 또 민족사와 지역사를 지방의 문화재를 통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신주백 연세대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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