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수거함 위에 커다란 곰인형이 앉아 있었다. 누군가와 오래오래 함께한 티가 역력했다. 집에 들어가다 다시 돌아섰다. 의류수거함에 다시 찾아가 팔을 뻗어 곰인형을 안아들고 들어왔다. 우선 욕실에 데려갔다. 욕조에 물을 담아 보디샴푸와 베이킹소다를 듬뿍 넣어 반나절을 푹 담근 다음, 열심히 열심히 헹궜다. 물을 먹은 인형은 100킬로는 되는 듯했다. 있는 힘을 다하여 지저분한 손발과 입 주변을 빠득빠득 닦았다. 짜도 짜도 물기가 가셔지지 않아 이삼일을 욕실에 두고 조금씩 물기를 말려서 몸무게를 줄였다. 내 힘으로 들 수 있을 정도가 된 날, 베란다 방범창에다 널었다. 이불빨래집게로 귀와 손과 발을 집어서 단단하게 매달았다. 베란다에 매달려 있는 이 녀석이 지나가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보일지 궁금해졌다. 벌을 서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일광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 그저 빨래처럼 보일지. 바깥에 나가 지나가는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햇볕 속에서 한결 뽀얘진 녀석의 무심하고 순한 표정이 마음에 들었다. 장차 내 방에서 왕초 노릇을 할 것이다. 상상마당 앞에서 주워 온 상상이, 지하 주차장에서 주워 온 연두, 공원에서 주워 온 오줌이, 베네치아의 수상버스에서 주워 온 개구리, 제주도 벼룩시장에서 데려온 바닥이, 모두들 이 녀석을 잘 따를 것 같았다. 누군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지나갔다. 예뻐서 그러나 싶어 잠시 우쭐하다, 혹시 원래 주인이었을까 싶어져 그 사람 뒷모양을 오래 지켜보았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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