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는 교통법규 위반으로 수천만~1억원대의 벌금을 무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2001년 노키아 임원이 취미인 오토바이를 즐기다가 과속으로 11만6000유로(약 1억4000만원)를 부과받아 화제가 됐다. 속도 위반으로 8만유로, 신호 위반으로 2만6000유로를 낸 기업인들도 있다.
이는 ‘일수(日數) 벌금’ 제도 때문이다. 벌금을 ‘몇 원’이 아니라 ‘며칠’로 선고하고 그 날짜 수에 ‘1일치 벌금액’을 곱하는 방식이다. 1일치 벌금액은 피고인의 소득을 기준으로 정하는데, 대략 하루 가처분소득의 절반이다. 즉 월평균 수입에서 세금과 각종 사회복지급여, 255유로의 기초생활수당을 뺀 금액의 60분의 1이다. 부양가족이 있으면 1인당 3유로씩 추가로 공제한다. 노키아 임원의 경우 벌금 일수는 14일에 불과했지만, 하필 스톡옵션을 행사한 시점이어서 ‘벌금 대박’을 맞았다.
소득 비례 벌금이라는 발상은 1748년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1년 핀란드에서 처음 제도화됐고 스웨덴, 덴마크, 독일, 프랑스, 스위스 등으로 퍼졌다. 기본 논리는 형벌의 등가성이다. 고소득자와 저소득자가 같은 죄를 지으면 같은 기간 징역을 산다. 이때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빈부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없지만, 경제적 손실(기회비용)은 각자의 평소 소득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징역 대신 부과하는 벌금도 각자 다른 ‘하루의 가치’에 비례해야 평등한 형벌이 된다.
화제가 되는 건 부유층이 무는 엄청난 벌금 액수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빈곤층 보호라는 측면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봤듯이 핀란드의 1일치 벌금액은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도록 배려하는 선에서 정해진다. 벌금 낼 돈이 없어 노역장에 끌려가는 이들이 한 해 4만여명에 이르는 우리 현실은 뭔가 잘못됐다. 이들에게 벌금을 대출해 주는 ‘장발장은행’이 출범한 데 이어 제도 개선 운동도 시작됐다. 일수 벌금 도입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벌금 유예나 분할납입을 허용하자는 시민청원이 4일 국회에서 진행된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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