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은 지난달 20일 탄저균 샘플이 평택 미공군 오산기지에 잘못 배달되어, 적절한 절차에 따라 신속히 폐기처분했다고 발표했다. 탄저균은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따라 국제법적으로 이동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치사율 80%가 넘는 대량살상용 생화학무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확한 실체가 규명되지 않고 있는 점이다. 우선 살아있는 탄저균이 언제, 얼마나, 어떻게 반입되었는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 무서운 탄저균이 한국의 미군기지 안에서 대북한 생화학전을 대비해 18년 동안이나 정부 몰래 실험되고 있었다니 놀랍기 이를 데 없다.
비록 미국 국방장관이 공식 사과를 했지만,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 그리고 한반도의 장래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공식 사과로 넘어갈 일이 결코 아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를 규정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소파)에서 미군 시설·기지 출입에 대한 통제가 허술하게 규정되어 있는 문제점에 대한 근본적 개선책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한-미 소파 규정은 다른 나라의 것과 비교하여 매우 불평등하다는 점은 수차 지적되었다.
미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불평등한 한-미 소파 통관·관세 규정조차도 명백히 위반했다. 통관 및 관세를 규정한 소파 제9조 5호는 미군의 공적 사용 물품에 대해서 ‘미군에 탁송된 군사화물’의 경우에는 세관검사를 면제한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제9조 5호 합의의사록 제3항에서는 ‘군사화물’이란 무기 및 비품에만 한정되지 않고 미군에 탁송되는 모든 화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미군은 탁송화물에 대한 ‘적절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한국 정부에 제공하도록 되어 있다. ‘적절한 정보’의 범위는 한미합동위원회에서 정한다. 개정양해사항에서는 ‘적절한 정보’에 ‘화물목록’과 ‘선적서류’가 반드시 포함되도록 되어 있다. 합의의사록 4항에서는 미군은 반입되는 군사물품이 한국 법령에 위반되지 않도록 모든 조처를 취해야 하고, 위반 물품 발견 시 언제든지 신속히 세관당국에 통지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탄저균과 관련해 미군은 한국에 세가지 잘못을 범했다. 첫째, 탄저균은 한국 법령과 생물무기금지협약을 위반한 위험물질인데도 미군은 한국에 18년 동안 알리지 않고 정기적으로 몰래 실험해왔다. 둘째, 미군은 위험한 생탄저균을 발견했음에도 즉시 알리지 않고 한달이나 늦게 알렸다. 셋째, 소파 규정에서 한미합동위원회의 비밀주의로 인해 반드시 한국에 알려야 할 ‘적절한 정보’ 범주에 탄저균을 의도적으로 제외한 직무유기는 없는지 밝혀야 한다.
1954년 한-미 상호방위조약으로 한국이 미군에 주병권을 넘겨준 뒤부터 미군 병사들은 한국을 자기들의 안방 드나들듯이 출입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소파에는 미군 시설과 기지 내 병력 수의 변화나 위험한 무기의 반출입, 군사작전, 군사기지의 사용 등에 대해 당국에 미리 알려주거나 협의하도록 하는 규정이 없다. 더욱이 한국은 전시작전통제권조차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허술한 소파 미군기지 관리 규정은 한국의 안보를 위해서나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매우 위험하다. 이번 탄저균의 군사화물 탁송도 이러한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그래서 한-미 두 나라는 재발 방지를 위해 앞서 언급한 사항들을 모두 명백히 규정하고 있는 미-일 소파 교환각서와 미-필리핀 기지협정, 독일 보충협정처럼 무기 반입, 군사작전, 군사훈련의 사전 협의 조항을 신설 및 보완하는 한-미 소파 개정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주기 바란다.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이장희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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