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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멋쟁이가 되는 길

등록 2015-06-08 18:35

후배가 생일 선물로 티셔츠를 사달라는 주문을 해서 옷가게에 간다. 옷들을 만지작대며 매장을 서성인다. 한 할머니가 원피스를 입고 거울에 비춰보고 있다. 남색에 작은 꽃무늬가 들어간, 무릎을 살짝 드러낸 옷이다. 시원하고 편안하다고 만족해하는 그 사람 옆에서 친구분이 퉁명스레 반응한다. “그걸 입고 어딜 가게. 젊은 애들이나 입는 건데. 너무 짧아.” 원피스의 깊게 파인 앞섶을 매만지며, 거울 앞에 서서 자기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던 할머니는 다시 탈의실에 들어간다. 나는 친구분에게 말을 붙여본다. “제가 보기엔 예쁘고 좋아 보이는데요. 잘 어울리셨어요.” 친구분은 너털웃음을 섞어 대꾸를 해주신다. “나이는 있어도 저 사람이 몸매가 좋으니까 무슨 옷이든 잘은 어울리지요.” 탈의실 아랫부분으로 움직이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는 할머니의 발목을 흘낏 바라본다. 나도 티셔츠를 골라 계산대에 선다. 탈의실 문이 열리고 할머니는 원피스를 그대로 입고 계산대로 다가온다. 입고 온 등산 점퍼와 등산 바지를 가게 주인에게 내민다. “입고 갈게요.” 내 옷을 산 것도 아닌데 할머니의 결정에 내 기분이 좋아진다. 시원한 원피스를 입은 것처럼 마음 한켠이 사뿐해진다. 그 할머니가 친구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이 기쁘다. 멋쟁이들은 혼자서 옷을 사러 다닌다고 들었다. 충고가 필요없어서다. 충고는 모험을 가로막고 안이한 선택을 강요하는 경향을 띤다. 충고에 의해 우리는 멋쟁이가 될 기회를 자주 놓쳐왔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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