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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민달팽이족’을 위한 아시아 협력 / 이현숙

등록 2015-06-14 20:35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청년들이 사는 고시원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4제곱미터 남짓한 공간에, 침대 발치는 책상 밑에 들어가 있었다. 창문이 없어 공기는 탁했다. 복도에도 빛이 들어오지 않아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이런 열악한 시설에도 월 30만원이 넘는 주거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청년들은 이중고를 호소했다.

실제 통계치도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분석해보면 서울 거주 청년들 3명 가운데 1명은 주거빈곤층이다. 주거빈곤율은 최저주거기준에 못 미치거나 옥탑방, 고시원 등 주택법상 주거공간이 아닌 곳에 거주하는 비율을 말한다.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서울 전체 가구의 주거빈곤율은 27%에서 22%로 계속 낮아지는 가운데 19~34살 청년세대는 32%에서 37%로 오히려 높아졌다. 청년들의 주거환경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는 뜻이다. 자녀가 없고 부양가족이 없어 공공임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도 원인 중 하나다. 주거빈곤 청년들은 등에 짊어지고 다니는 집이 없는 민달팽이를 빗대 ‘민달팽이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청년들이 스스로 주거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청년주거 관련 단체들은 청년 주거 문제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대안을 찾기 위해 애써왔다. 특히 민달팽이유니온은 직접 주택협동조합을 만들고, 협동조합 주택 두 채를 꾸리고 있다. 조합원들의 출자금에 후원과 대출을 더해 집을 빌린 뒤 조합원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셰어하우스 우주’는 낡은 주택을 빌려 고친 뒤 취미 등 공통의 테마를 가진 입주자들을 받아 ‘하우스 셰어’를 할 수 있게 돕는다. 현재 19채의 거주지에 130여명의 청년들이 입주해 함께 살고 있다.

늘어나는 ‘민달팽이족’을 위해 서울시도 올해 들어 잰걸음을 하고 있다. 연초에 청년문제를 전담하는 부서로 ‘청년정책담당관’을 만들었다. 또한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서울시 청년기본조례’도 제정했다. 일자리 만들기에서 더 나아가 생활안정 전반으로 지원 범위를 넓힌 것이다. 당사자인 청년들이 직접 참여해 ‘2020 청년정책 기본계획’을 서울시와 함께 만들고 있다.

아울러 민간과 협력하는 ‘빈집살리기’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도심의 빈집을 고쳐 청년 등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사업으로, 다음달 첫선을 보인다. 또한 이달 들어 민관 출자형 사회주택 공급도 시작했다. 서울시가 주택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에 땅을 빌려주고, 이들이 집을 지어 싼값에 임대하는 방식이다. 100% 시 예산으로 짓는 공공임대도 아니고 건설사·조합 등 민간임대도 아닌 중간 형태인 셈이다.

청년 민달팽이들은 비단 서울만이 아니라 급속한 성장을 한 아시아 대도시에서 생겨나고 있다. 작은 집에서 여러 가족이 거주하거나 방 한 칸을 칸막이로 나눠 여러 명이 사는 주거형태는 청년들을 포함한 도시 서민들의 삶의 모습이 되었다. 아시아 곳곳에서 주거빈곤 문제를 풀어가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 주거빈곤층의 문제를 사회적 경제 방식으로 풀어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다가오는 7월2일 서울에 아시아 청년 사회혁신가들이 모인다. 한겨레신문사가 주최하는 포럼에서 이들은 청년 당사자의 주거문제를 넘어 주거빈곤과 주거공동체로 주제를 넓혀 머리를 맞댄다. 인도, 홍콩, 대만, 일본, 필리핀 등 10여명의 청년 혁신가들은 한국의 청년들과 함께 다양한 사례를 공유한다. 아시아의 민달팽이들을 위한 청년 혁신가들의 열띤 토론이 기대된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연구소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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