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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공동체의 위기와 정치인 / 임범

등록 2015-06-15 18:46

“내일도 뉴욕은 여기 있을 겁니다. … 우리는 다시 건설할 것이고, 전보다 더 튼튼해질 겁니다. … 나는 뉴욕 사람들이 다른 국가, 다른 세계의 모범사례가 되길 희망합니다. 테러리즘이 우리를 멈출 수 없음을 보여줍시다.”

2001년 9월11일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뉴욕 시가지에서 마이크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그는 분노를 자극하지 않았다. 거꾸로 공동체에 대한 구성원들의 신뢰와 애정, 헌신에의 의지를 환기시켰다. (그들의) 폭력이 (우리의) 신뢰와 애정을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자고 했다. 그날, 텔레비전에서 이 연설 장면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웠던 기억이 선명하다. 정치인이 위기 상황에서 할 일이 저거구나. 시민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환기시키는 것. 그리고 뉴욕은 9·11 사태를 수습하면서 시민공동체의 건재함을 입증해 보였다. 거기엔 감동이 있었다.

9·11과 메르스 사태를 비교하는 건 무리다. 말하려는 건 정치인의 태도다. 메르스 사태가 발발하자 정부는 시민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감염지인 병원을 알려주지 않았다. 여기저기 소문이 돌자 유언비어를 처벌한다고 했다. ‘늑장 대응’, ‘축소 대응’ 등등 숱한 비난을 받았지만 나는 다른 각도에서 답답했다. 책임선에 있는 정치인들에게 이 공동체는, 구성원들은 말썽 일으키지 않고 가만히 있었으면 하는 존재이기만 한 것 아닌가. 어느 병원인지 알아도 그들이 상식에 맞게 필요한 만큼 자제하고 조심하면서 사태 수습에 기여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한 것 같다. 좀 더 능동적으로 그들이 음양으로 의료진을 격려하거나 예상 못한 중요한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대통령 이하 정치인들은 이 공동체를, 구성원들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았다.

공동체가 좋기만 하다면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일 거다. 여차하면 약자에게 잔인해지고 개인에게 폭력성을 드러내는 게 공동체의 한 속성이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면 그런 속성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최소한 공동체가 좋아질 가능성을 신뢰해야 한다. 그러기 싫으면 산골로 들어가든가, 장사를 하든가, 예술을 하든가 할 일이다. 세상에 대한 궁금함이 전혀 없는 이가 학문한다면, 돈 벌 의욕이 없는 이가 사업한다면 믿음이 가나. 공동체를 신뢰하거나 신뢰하려는 정치인이라면, 위기가 닥쳤을 때 열정이 솟구칠 거다.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 공동체가 좋아질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에 피가 끓을 거다. 그러면 감동할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다. 반대로 신뢰가 없다면, 감동할 일을 바라지도 않을 거고, 일어나지도 않을 거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금 달랐다. 정보를 공개하고 시민의 협조를 구했다. 그를 두고 ‘표를 얻으려 한다’, ‘공명심이다’ 등의 비난을 한다. 그런데 공명심이 없으면, 일을 잘해서 표를 얻으려는 마음이 없으면 그게 정치인인가. 정치인으로서, 시민공동체에 대한 신뢰와 책임을 드러내고 환기시킬 줄 안다는 것만으로도 한 수 위다. 최근 한 글을 읽고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담긴 어법을 구사했던 이가 그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또 그 사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사스 문제를 수습한 뒤, 방역 담당자들을 격려하면서 원고 안 읽고 즉석연설을 하다가 정해진 시간을 넘겼단다. “대체로 읽습니다. 읽는데, 현장에서 도저히 적은 것으론 표현 못할 감동을 받으면 그 감동을 표현하고 싶어하다 보니 이래 됩니다.” 그는 ‘감동’을 알았고, 그걸 구성원들과 공유하려 했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진보와 보수의 차이일까. 아닌 것 같다. 줄리아니 시장은 공화당이다.

임범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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