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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메르스, 국회법, 논리 결핍과 도덕주의 / 주병기

등록 2015-06-29 18:39

메르스 발병 초기, 정부는 유언비어 엄벌과 정보 통제로 일관했다. ‘정보 통제가 혼란을 막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왜 그런가에 대한 논리는 없었다. ‘병원을 공개하면 환자들에게 혼란을 야기한다’고도 했다. 이는 궤변에 가깝게 느껴졌다. 병원을 공개해 사람들이 스스로 경계를 강화하는 것을 도저히 혼란이라 보기 어려웠다.

이 와중에, 입법부가 제정한 법 취지를 행정부가 행정입법으로 무력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결정에서도 논리의 결핍과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엿보였다.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거부권 행사의 충분한 근거보다는 입법부를 불신하고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대통령 논리대로라면 ‘국민을 중심에 두는’ 정치인은 ‘국민을 중심에 두는’ 자신의 제안에 협조해야 하고, 특히 대통령의 신뢰를 받았던 일부 (여당)정치인들은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을 중심에 두지 않고 이기적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비윤리적인 처사라는 것이다.

행정부 권한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 논란의 여지가 크다는 것은 과거 같은 법안을 제안했던 사람으로서 몰랐을 리 없다. 왜 자신이 과거 지지했던 법안을 지금은 반대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입법부의 행정입법에 대한 견제 강화는, 대통령의 권한이 매우 강한 한국식 대통령제의 문제를 보완하는 긍정적 요소도 있다. 따라서 이를 거부하는 논리는, 위헌 소지가 있다는 스스로도 확신 못하는 주장보다 더 확고한 것이어야 했다. 더구나 법안이, 정당간의 지난한 협상의 과정을 거듭한 산물이니 말이다. 논리를 찾기 어렵다면 위헌 소지에 대한 판단을 추후 사법부에 넘길 수도 있다. ‘국회법 개정은 곧 국정 마비, 정부 무기력화를 초래한다’는 비논리적 선동으로 결론을 대신할 게 아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조지 부시는 이라크전을 밀어붙이면서, 논리의 결핍을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나를 따르면 선이고 아니면 악이다”라는 식의 천박한 도덕론으로 대체하였던 것을 기억한다. 논리의 결핍과 이를 대체하는 도덕적 호소는 천박한 민주주의에서 번성하고 다시 천박한 민주주의를 재생산한다. 국제정치에서 민주주의는 없다. 조지 부시의 도덕론과 이라크전은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가능하였다. 행정부 수장의 논리 결핍과 도덕주의는 한국 민주주의의 천박성을 보여주는가? 그렇지 않아야 하고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다.

논리의 결핍은 메르스 사태처럼 국민의 안위를 위협할 수 있다. 정부는 늦게나마 정보공개와 적극적 격리의 방역대책을 수립하였다. 논리의 결핍을 도덕적 호소와 반대세력에 대한 폄하로 땜질하려 하기보다, 강화된 자기 논리로 무장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보호하고, 또한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이다. ‘국민을 중심에 두는’ 방안은 다양할 수 있고 그런 다양한 이견들 사이에 타협점을 찾아야 하는 것이 정치의 문제이다. 이견들 간의 논박과 더 강한 논리로 재무장하는 ‘당리당략적’ 싸움 속에서 타협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얻어지는 결정이 국민을 중심에 두는 최선의 방식이기에 민주주의 정치체계가 번영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이런 기본 원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국가라는 배는 논리의 톱니바퀴들이 견고하게 맞물려 있을 때 안전하게 운행될 수 있다. 행정부의 논리 결핍은 때로는 위험한 결과를 야기하고 때로는 혼란과 불필요한 갈등을 초래한다. 이 배를 몰고 가는 행정부의 수장은 도덕주의에 호소하여 결핍된 논리를 미화하거나 반론을 비난할 것이 아니라, 반대 입장을 존중하며 스스로 확고한 논리를 세우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 행정부가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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