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옛집 마당

등록 2015-07-01 18:38

경주에 다시 찾아갈 계획을 세웠다. 인터넷 지도를 펴고 내가 살았던 성건동 집을 찾아보았다. 동네가 많이 변해서 로드뷰를 이리저리 돌려보아도, 내가 뛰어놀던 골목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맨 처음 경주를 다시 찾아갔던 건 스물세살 때였다. 십년 만에 다시 찾아간 그 동네엔 내가 식별할 만한 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길을 걷다가 이 어름일 것 같다는 느낌만으로 멈춰섰고 어느 집 대문 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북천에서 주워다 심어둔 석상이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당에 그대로 있었다. 뵌 적은 없지만 본 적은 있는, 조너선의 할머니가 떠오른다. 스코틀랜드 사람 조너선은 휴대폰을 꺼내 내게 보여준 적이 있다. 구글지도를 열어, 자기 고향집이 있는 에든버러 외곽을 보여주었다. 화면을 확대하며, 외딴집 지붕 하나를 가리켰다. 자신이 이 집에서 태어났다며, 화면을 더 확대해 보였다. 집 마당에 서서, 호스를 손에 들고 잔디에 물을 주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이분이 자기 할머니라며 조너선은 활짝 웃었다. 지도에다 대고 “안녕? 할머니!” 하고 인사했다. 조너선은 할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이 위성사진을 확대해 바라본다 했다. 우리 집 마당의 석상은 조너선의 할머니처럼 아직 거기에 있을까. 유년 시절의 내게는 거대하고 우람한 형상이었던 돌. 실은 그저 그런 돌이지만, 거기서 내가 가장 행복한 유년을 보냈다는 걸 증명해주는 내게는 유일한 이미지인 돌.

김소연 시인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