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제50부가 대목이다. 합병 관련 가처분이 줄줄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지난 26일에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 간 합병 추진을 금지한 기존 가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이 있었고, 1일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추진을 중지시켜 달라는 엘리엇의 가처분 신청을 각하 또는 기각하는 결정이 있었다. 이 두 건의 결정에 의해 하나금융지주와 삼성은 합병을 논의 또는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삼성물산이 우호세력인 케이씨씨(KCC)에 매각한 자사주에 대한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에 관한 결정은 조만간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이 두 합병 관련 가처분은 요새 표현으로 “같은 듯, 같지 않은, 같은 것 같은 사건”이다. 우선 같은 점부터 보면 두 가처분 모두 회사 간의 합병을 주제로 하고 있고, 동일한 재판부가 담당하고 있다. 승소한 쪽의 법률대리를 국내 최대의 법률사무소가 맡고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가처분 결정이 나오자마자 언론들이 “합병 추진에 탄력” 운운하며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형국도 판박이다.
그러나 다른 점도 많이 있다. 우선 1일 나온 삼성물산 관련한 가처분의 핵심 쟁점은 엘리엇의 주장대로, 합병 비율을 과거 주가의 평균으로 하도록 규정한 자본시장통합법의 법조문이 지나치게 부당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필자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엘리엇이 타당하지 않다고 본 이번 결정의 방향은 이미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다. 다만 재판부가 특례규정을 배타적으로 해석한 부분은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매각한 부분은 완전히 별개의 논점이고 이것은 지극히 논쟁적이다. 필자는 과거는 차치하더라도 2011년 3월에 상법이 개정되어 자사주의 취득과 처분을 회사 자본의 증자 또는 감자로 해석하는 시각이 채택된 지금에는 이번 자사주 처분은 신주 발행 시에 준수해야 하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해한 것이었기에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 사건에 비해 지난달에 있었던 외환은행과 하나은행 간 합병과 관련한 가처분 이의신청 결정은 대단히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 이의신청 결정은 동일한 재판부가 불과 4개월 전에 내린 결정을 번복한 것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특이하다. 더욱 이례적인 것은 재판부가 중요 쟁점 전부에 대해 똑 부러진 의견을 제시하지 않고 “보이지는 않는다”, “가능성이 있다”,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단정하기 어렵다”는 식으로 얼버무린 후 판단에서 “그렇다면 (과거의 가처분 결정을) 취소”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필자는 도무지 얼버무린 쟁점 판단과 결론 사이에 아무런 논리적 연관관계를 찾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합병에 관한 논의를 5년이 지나서 당사자 간의 합의가 있는 경우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명문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5년이 경과하지 않은 시점에서도 논의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이끌어낸 점은 “눈을 질끈 감고 내린 판결”의 백미다. 마치 상급법원에서 이 결정을 번복하기 좋으라고 일부러 문제가 있는 기술을 하고 있다는 느낌조차 들 정도다. 필자의 평가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지난 2월에 있었던 애초의 가처분 결정문과 이번 이의신청 결정문을 대비해서 읽어 보기 바란다. 애초 가처분 결정은 모든 쟁점에 대해 똑 부러진 재판부의 판단을 내린 후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이제 재판부는 법원 결정의 보편적 진실성을 입증해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첫번째 관문은 앞으로 나올 자사주 처분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이 될 것이다. 법원은 외부인들이 두 사건의 법률대리를 국내 최대의 법률사무소가 맡고 있다는 점을 공연히 떠올리지 않도록 그 결정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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