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메릴랜드의 한 연구소가 탄저균 샘플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국 당국에 신고한 게 5월22일이니 벌써 한달 반 가까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속시원하게 밝혀진 게 없다. 정부도 이달 중순께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보자는 태도이니 딱한 노릇이다.
그동안 확인된 사실이라고는 4월25일 미국 국방부 더그웨이 연구소에서 비활성 탄저균 샘플을 미국 내 9개 주 연구소와 오산기지 등에 보냈고, 5월27일 주한미군은 ‘탄저균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폐기했다는 것 정도다. 그러나 이번 실험이 2013년부터 주한미군에서 하는 생화학무기 방어전략인 주피터(JUPITR·연합 주한미군 포털 및 통합 위협 인식)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의혹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실험·훈련인지, 다른 위험요소는 없는지, 이번 실험이 주한미군 발표처럼 처음인지, 오산 이외의 다른 기지에서도 진행된 것은 아닌지, 다른 생물작용제는 반입되지 않았는지 등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미군은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은 세균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6·25전쟁 당시인 1952년 북한과 중국은 미군이 항공기로 세균전을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미국은 “근거 없는 날조”라고 부인했지만, 비정부기구인 국제과학자협회의 ‘니덤 보고서’는 미군이 세균전을 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은 당시 생물무기 등을 금지한 제네바의정서(1925년)를 비준하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은 1969년이 되어서야 화학 및 생물무기의 포기를 선언했고, 1972년에 생물무기금지협약(BWC)에 비준했다.
그러나 미국은 방어용 명목으로 여전히 생물무기 연구를 하고 있다. 특히 2001년 9·11 직후 우편물로 의회와 언론사 등에 탄저균이 배달돼 5명이 숨진 ‘탄저균 테러’ 이후 생물무기 연구를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생물무기 방어체계 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생물무기 개발이 필요하기 때문에 방어용과 공격용의 구분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국방부는 최근 주피터에 대한 시민단체의 공개 질의에 “한국 국민 방어와 한미동맹군 보호에 필요한 주한미군사의 역량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의 생물무기 위협을 거론했다. 그러나 북한의 위협은 성역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은 정부의 핵심 임무다. 정부가 위험한 물질의 반입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직무 유기에 가깝다.
주피터가 꼭 대북 억제력을 위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미국 육군 에지우드 생화학센터의 주피터 책임자인 피터 이매뉴얼 박사는 지난해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주한미군이 원했고, 한국이 우방국이고 미국의 자원이 집중된 곳”이라며 “한국에서 설계된 틀은 미군의 아프리카·유럽·태평양사령부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전세계 미군을 위한 실험장이라는 이야기다. 대북 억제력에 한정된 일이 아니니 한국에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은 2004년 8월 주한미군 10대 군사임무 중 하나인 ‘후방지역 제독’ 임무를 넘겨받았으며, 2011년부터는 미국과 연합생물방어연습을 진행하고 있다. 또 2013년에는 한-미 공조체제인 ‘생물무기감시포털’(PSP) 구축 협약을 맺었다. 그런데도 주한미군이 어떤 물질을 반입해 어떤 실험과 훈련을 하는지 양국간 전혀 공유되지 않은 것을 정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정부는 곧 한·미 합동조사단이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한다. 철저히 검증해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한점 의혹 없는 조사를 바탕으로 소파(SOFA: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개정을 포함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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