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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사회책임 조달’의 의미있는 진전 / 이현숙

등록 2015-07-05 19:03

서울 서대문구의 뒷골목 청소는 사회적 기업이 맡고 있다. 청소용역 사회적 기업 ‘한누리’는 3년 전 서대문구청의 뒷골목 청소사업을 위탁받았다. 단기 공공근로 때보다 지역주민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평가 덕택에 한누리는 다른 지역의 청소사업도 맡아,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초기 10명에서 60명으로 크게 늘었다. 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60살 이상의 어르신들이다.

사실 한누리처럼 신생 사회적 기업이 구청의 청소사업을 맡기는 쉽지 않다. 공공기관의 물품과 서비스 구매, 공공사업 발주 등의 공공조달은 대체로 경쟁입찰로 이뤄진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조직이 가격이나 업력 등에서 일반 기업체를 앞서기는 어렵다. 서대문구청이 사회적 기업을 찾아 키운다는 정책에 따라 계약 방법을 협상에 의한 제한경쟁입찰로 바꿔 한누리는 그나마 입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성북구청의 경우 3년 전 지자체 가운데 가장 먼저 ‘사회적 경제 제품 구매 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사회적 경제 조직의 제품을 우선 구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위법이 없어 2천만원 이하의 사업만 수의계약 할 수 있는 점이 확산의 걸림돌이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사회책임 조달 확산을 위한 움직임들이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연말에 국회에서는 사회책임 공공조달법과 국가계약법 관련 개정안들이 발의됐다. 사회책임 조달은 공공기관이 조달 과정에서 환경, 고용, 인권, 공정거래, 지역사회 기여 등의 사회·환경적 영향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국회 시에스아르(CSR)정책연구포럼 회원이 중심이 되어 홍일표 의원 등 16명이 공동발의했다. 개정안들은 현재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민관 협력의 연결망을 만들자는 구상도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3일 서울시는 사회적 가치에 기반한 공공조달 추진을 위해 구청과 교육청, 사회적 경제 협의체 등 33곳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참여 기관들은 관련 조례에 따라 사회적 경제 조직의 제품을 우선 구매하고, 누리집 등에서 시민에게 구매계획과 실정을 공개하는 ‘사회적 경제 공공조달 공시제’도 시행한다. 이번 협약으로 공공성과 사회성이 높은 기업들이 공공조달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지고, 사회책임 조달 분위기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많은 나라에서 정부는 가장 큰 소비자이다. 우리나라 공공조달시장도 연간 100조원대로 국내총생산의 8%를 차지한다. 공공조달 자원의 대부분은 국민에게서 거둔 세금이다. 당연히 공공조달의 최종 이익은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정부는 공공조달의 목적을 공공의 가치 증진에 두고 정책적인 수단으로 활용해야 한다. 유럽연합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공공조달에서 사회적 가치를 적극 수용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유럽연합은 양질의 일자리, 차별 해소, 재분배, 사회권과 노동권 준수 등을 공공조달 원칙으로 삼아 적용하고 있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우리 정부도 조달정책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정부는 2013년 시설공사 발주 때 낙찰 기준을 최저가제에서 종합심사제로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종합심사낙찰제는 가격이나 수행능력뿐 아니라, 고용이나 공정거래, 안전 등 사회적 책임 부문도 고려해 낙찰자를 선정하는 제도이다. 내년부터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물품과 용역 부문에서도 관련 지침을 내년에 개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가점방식의 운용 등 한계는 있지만 사회책임 조달을 넓혀가는 점에서 의미있는 진전이다.

이현숙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적경제센터장 h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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