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월드>의 주인공은 티렉스와 랩터의 교잡종이다. 공룡의 피를 빨았던 모기로 공룡을 부활시킨다는 전편의 아이디어가, 공룡 유전체를 편집해 잡종 공룡을 만들어낸다는 설정으로 진화했다. 생명공학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매머드 부활처럼 황당한 아이디어가 실제로 추진되는 시대다. 그래도 공룡의 부활을 보려면 꽤 오래 살아야 할 것 같긴 하다.
지난 5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는 인간 유전체 편집과 관련해 주요한 발의를 했다. 3월 중국 과학자들이 인간배아 유전자 편집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지 두 달 만이다. 논란의 주인공이 된 기술은 ‘CRISPR/Cas9’(이하 크리스퍼), 저렴한 가격으로 간단하게 원하는 생물의 유전체를 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론상으로 크리스퍼 기술에 제약은 없다. 유전병에 걸린 태아를 치료할 수도, 아이의 눈동자 색깔을 바꿀 수도, 모기를 멸종시킬 수도 있다.
새로운 기술의 사회 편입에는 합의가 필요하다. 크리스퍼는 생물학이 사회에 던져온 몇 가지 윤리적 논란들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그 하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의 문제다. 우생학, 시험관 아기, 배아줄기세포로 이어온 윤리적 논란은 크리스퍼에도 재현될 것이다. 인간배아실험에 관한 초국가적 법률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의 과학자들이 인간배아 유전자의 편집을 시도했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크리스퍼는 효율성과 특이성, 그리고 부작용 등이 아직 임상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
크리스퍼는 소비자 우생학의 문제도 야기한다. 치명적인 유전적 질환의 치료 목적이 아니라, 자식의 유전적 자원을 증강시키려는 의도로 크리스퍼 기술을 사용하는 특권층이 탄생할 수 있다. <가타카>라는 영화에 등장했던 미래가 언젠가는 올 것이다. 이제 유전자 편집은 여부가 아니라 시기의 문제다. 인류는 자식을 위해 좋은 형질을 향상시키고, 나쁜 형질을 제거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유럽 인권헌장’은 “인간 유전체 변형은 질병을 예방, 진단, 치료할 목적으로 행해져야 하며, 자손의 유전체를 변형하려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해두었다. 한국도 준비해야 한다.
크리스퍼가 초래할 더 큰 문제는 생태계 교란이다. 이미 30개가 넘는 종의 유전자 편집이 가능하다고 보고되었고, 그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지난 4월 발표된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은 실험실에서 제조된 한 마리의 모기가 생태계로 퍼져나가, 같은 종에 원하는 유전형을 무제한으로 퍼뜨릴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류는 이미 말라리아모기를 언제든 멸종시킬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생명공학의 생태계 교란은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중심으로 선진국에서는 오래된 논란이고, 크리스퍼는 이 논란에 기름을 부을 예정이다.
크리스퍼가 주는 교훈은 단지 이런 위험성에 대한 경고만은 아니다. 남궁석 교수의 말처럼, 1987년 이름 모를 과학자로부터 시작된 세균 연구가 덴마크 요구르트 회사를 거쳐 2012년 동물실험 결과를 얻기까지, 연구의 경제성만을 따지는 사회에서 크리스퍼는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크리스퍼는 이제 질병 치료를 넘어, 병충해에 강한 밀과 벼, 뿔 없는 가축 등의 농축산업으로 범위를 확장해 가는 신성장 동력이 되었다. 200여건의 특허가 출원되었고, 우후죽순처럼 회사들이 설립되고 있다. 불과 3년 만의 일이다. 당장 돈이 안 되는 연구는 때려치우라는 현 정부의 정책은 단지 기초과학을 고사시키는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 상태로 20년만 지나면 한국은 성장동력을 잃은 국가가 될지 모른다. 장기적 안목으로 기초를 중시하지 않는 국가의 말로란 그런 것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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