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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동성혼과 헌법 / 박용현

등록 2015-07-07 18:56

전통적으로 혼인은 개인의 결합이 아니라 가문 대 가문의 결합이었다. 그래서 혼례의 모든 절차는 혼주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또 남녀 관계를 상하질서로 보고 이를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었다. 신랑이 첫날밤을 지낸 뒤에야 장인·장모에게 인사했던 혼례 절차가 이를 상징한다고 한다. 혼인의 목적은 많은 자녀를 생산해 집안을 번성케 하는 것이었다.(<한국전통문화의 구조적 이해>)

그러나 이런 전통적 인식은 상당 부분이 헌법에 의해 부정돼 왔다. 헌법 36조는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가문’의 자리를 ‘개인의 존엄’이 차지했고 ‘여필남종’(女必男從)은 ‘양성평등’으로 대체됐다. 출산도 더 이상 혼인의 본질이 아니다. 불임 부부나 자녀를 두지 않으려는 부부의 혼인도 당연히 인정된다. 동성동본 금혼과 호주제도 위헌 결정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영미 전통에서도 결혼한 여성은 남편을 통하지 않고는 재산을 소유할 수도, 빚을 낼 수도, 계약을 맺을 수도 없다는 유부녀법(coverture law)이 있었다. 이를 거역하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봤다. 또 흑인과 백인의 결혼, 나아가 백인과 동양인의 결혼까지 자연과 신의 섭리에 위배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모두 위헌으로 선언됐다. 그 화룡점정이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허용 판결이다.(영미 전통상 출산은 애초부터 덜 강조됐다. 성적 불능은 혼인 무효 사유가 됐지만 불임은 그렇지 않았다.)

동성혼의 경우 우리 헌법에는 분명한 금지 규정이 없다. 헌법 36조에 ‘양성’이란 표현이 있지만 이는 부부의 ‘평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헌법 제정 당시는 동성혼이 공론화되기도 전이었던 만큼 동성혼에 대한 판단 자체가 결여돼 있다는 게 여러 법학자들의 견해다. 결국 동성혼 허용 여부도 혼인의 전통적 개념에 대한 재해석에 달려 있는 셈이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전통은 존중돼야 하지만, 과거가 현재를 전적으로 지배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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