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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내가 본 ‘연평해전’ / 권혁철

등록 2015-07-14 18:26

나는 <연평해전>을 두번 봤다. 지난달 개봉 며칠 뒤 영화관을 찾았다. ‘이 영화를 봐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 때문이었다. 나는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을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

지난 주말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연평해전>을 봤다. 나는 영화 비평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다. <연평해전>의 완성도, 서사 구조, 캐릭터에 대한 평가는 내 능력 밖이다. 나는 영화의 내용을 눈여겨봤다. <연평해전>에는 내가 아는 ‘팩트’와 다른 게 꽤 있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를 놓고 사실관계를 꼬치꼬치 따지고 싶지 않아 하나만 예를 들겠다. 영화 첫머리에 자막이 북방한계선(NLL)을 설명한다. “유엔군사령관은 휴전과 함께 해상 NLL을 설정하면서 NLL 이북에 있는 모든 도서를 중국과 북한에 양도했다. 북한은 유엔군 점령하에 있던 서해상의 섬들을 다시 차지하면서 NLL을 받아들였다.”

이는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 1968년부터 1994년까지 군사정전위 유엔군사령부 특별고문으로 일했던 이문항씨는 1999년 9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분명히 말하건대 유엔사는 북쪽에 알려주거나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북방한계선을 설정했다.”

이문항씨는 북한이 처음엔 북방한계선 존재 자체를 몰랐고 전후 복구의 한숨을 돌린 50년대 후반부터 북방한계선을 문제 삼았다고 설명한다. “(북한이) 57년 11월에는 연평도 인근에서 남한 어선 56척을 영해침범 혐의로 나포했다. 공식적인 정전위 회담 기록상에는 서해상에서 북한의 도발사건은 1959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연평해전>보다 요즘 이 영화와 제2연평해전을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보도하는 <조선일보>가 더 흥미롭다. “제2연평해전은 올해 공식적으로 승전임을 인정받고 완전한 명예회복을 이뤘다. …남북관계와 월드컵에 밀려 뒷전이었고 ‘패전’ 취급을 받았다.”(조선일보 6월30일치)

그런데 13년 전 해군에 패전의 멍에를 씌운 것은 조선일보였다. 당시 조선일보는 ‘북 함정 주변에 아군 함정 8척 포진 수천발 쏘고도 격침 못시켜’란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제2연평해전 때 북한 경비정 등산곶 684호를 격침시키지 못한 해군을 질타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사설과 외부 기고에서 제2연평해전을 ‘서해 참패’ ‘패전’으로 규정했다.

패전과 승전을 오가는 조선일보식 널뛰기 보도는 북방한계선 문제를 군사적 승패의 문제로 몰고 간다. 정치적 해결의 가능성을 아예 닫아버린다. 전투에는 승자와 패자만 있을 뿐이다. 북방한계선 근처 남북 충돌을 승전과 패전이란 전투 중심의 잣대로 평가하다 보면 남북의 젊은이들이 연이어 연평도의 푸른 바닷속으로 사라져간 비극은 잊어버리기 쉽다. 제2연평해전에서 숨진 참수리 357호 대원들은 군인이자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 남편이었다. 제1연평해전 때 군대에 끌려가서 무덤도 없는 바닷속의 원귀가 된 북녘 젊은이들의 어머니가 밤새도록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울고 있으리라.(박노자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6월25일 국무회의에서 “엔엘엘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더 이상 젊은이들이 북방한계선을 지키다 피를 흘리지 않게 해야 할 정치적 책임도 있다.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말처럼 ‘정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열린 가슴으로 숭고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추신
오해를 할까봐 밝힌다. 나는 북방한계선이 남북의 실질적 해상경계선 구실을 해왔고, 북방한계선을 지키는 군인들은 튼튼한 대비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권혁철 사회2부 지역데스크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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