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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탈북자 인권’을 위해 싸우는 탈북자 / 김보근

등록 2015-07-19 18:38수정 2015-07-20 09:51

“그건 그 친구를 다시 한번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죠.”

얼마 전 탈북자 출신 최연소 박사인 주승현(34) 박사(연세대 정치학)를 만났을 때 그가 한 말이다. 여기서 ‘그 친구’는 지난 6월15일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 병사를 가리킨다. 당시 우리 국방부는 그가 넘어오자마자 즉각 언론에 귀순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이 병사가 멀리 함흥에서 7일 동안 차량과 도보로 내려왔다는 점, 북한군 후방부대 고위 간부의 운전병이라는 점 등을 언론에 흘렸다. 북에 남은 탈북자 가족 보호 등을 위해 정보 제한이 필요하다고 말해왔던 정부가 사실상 탈북자의 신원을 귀순 즉시 북한에 알려준 꼴이다.

주 박사는 국방부의 언론플레이를 “사선을 넘어온 귀순 병사에 대한 인격적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 친구가 이제 가족에 대한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주 박사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탈북자들이야말로 인권 사각지대에 내몰린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주 박사가 그 병사에게 큰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자신도 휴전선을 넘어온 북한 병사 출신이기 때문이다. 주 박사는 10여년 전 북한군 지피(GP)에서 우리 군 지피로 넘어왔다. 북한군 지피를 떠난 뒤 25분 만이었다. 그러나 남한살이는 쉽지 않았다. 그는 “남한에서 환영받지 못하며 잉여인간처럼 돼버렸”고, 북한에서도 굶지는 않았는데 남한에 와서 굶어봤다고 한다. 그러다가 분단문제 해결에 일조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학부부터 시작해 10년 만인 지난해 ‘분단 가치’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단다.

“정부가 신상을 밝히지 않았다면, 북에서는 그 병사를 단순 실종 처리했을 것입니다.”

휴전선에서 200㎞ 떨어진 함흥에서 사라진 병사가 남으로 갔을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했겠느냐는 것이다.

“다 메르스 사태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국내에서는 메르스 방역에 실패한 박근혜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었다. 그는 정부가 이런 여론의 눈길을 돌리기 위해 귀순 병사 정보를 신속하고 자세히 공개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귀순 병사의 인권은 너무나 쉽게 무시돼버렸다.

탈북자 인권침해 사례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제 ‘탈북자 조작간첩 사건’은 너무도 익숙한 뉴스가 돼버렸다. 예전에는 남한 출신 조작간첩 희생자가 많았는데, 이제는 탈북자들이 간첩 조작과 안보몰이의 주요 희생양이 된 것 같다. 이들이 아직 우리 사회에 익숙하지 않고 권리의식도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탈북자 인권침해 문제는 오늘내일 끝날 문제가 아닐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위기에 몰리는 경우나 대선 등 정치적 일정에 따라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때 침해받은 탈북자 인권 회복을 위해 과연 누가 함께 싸워줄 수 있을까.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의 경우처럼 지금까지는 주로 진보적 변호사들과 시민단체들이었다. 당시 탈북자 단체들은 오히려 유우성씨를 처벌하라고 성명을 내놓기까지 했다.

탈북자들이 인권침해로 고통받는 동료 탈북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서는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 탈북자가 나설 경우 탈북자 인권침해 사례는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탈북자가 탈북자 인권침해 사실을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귀순 병사였던 주승현 박사가 지난 6월 귀순한 병사에게 벌어진 인권침해 사실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 그 한 사례일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동료 탈북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탈북자들을 볼 때, 전체 탈북자들을 향한 남한 사회의 시선도 한결 따뜻해질 것이다.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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