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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어느 청년이 보낸 10년 / 박점규

등록 2015-07-20 18:31수정 2015-07-21 11:46

갓 서른을 넘긴 한 청년이 있다. 그가 맨 처음 돈 버는 노동을 한 곳은 일식집 주방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난 2002년 겨울, 열아홉 청년은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일해 월 50만원을 벌었다. 휴학과 복학이 반복된 대학 생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청년은 피시방, 호프집, 조개구이 집, 삼계탕 집, 노래방을 강의실보다 자주 드나들어야 했다. 컴퓨터를 수리하고 싱크대를 조립하는 일을 배웠고, 청소년수련원 도우미와 홈플러스 초밥 판매원을 했다. 전공 서적보다 알바 광고를 뒤지는 일이 더 많았다. 월급날이면 제대로 받은 건지 아리송했지만, 법정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2005년 겨울방학이었다. 대우조선해양 알바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짐을 싸 거제로 내려갔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내부 진공 박스를 조립하는 일이었다. 두 명이 70킬로그램짜리 박스를 들면 그 밑에서 다른 한 명이 볼트를 조였다. 두 달이 되어갈 무렵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왔다. 조선소 의무실을 찾았더니 무리해서 근육 통증이 생긴 것이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노동조합이라도 찾아가볼까 했지만 접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대우조선해양에서 받은 돈을 몽땅 허리 치료에 써야 했다.

2011년 가을, 8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고 수질산업기사 자격증을 따서 들어간 첫 직장은 태양광 전지를 만드는 현대중공업 음성공장에서 폐수 처리를 하는 사내하청 업체였다. 청년은 독성 물질인 불산 폐수를 다루는 일을 했다. 위험하고 힘든 날들이었다. 밤낮으로 일해서 받은 월급은 164만원. 아무리 하청업체라고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급이 오르고 생활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정규직이 될 가능성도 없었다. 음성을 떠난 그는 삼성전자에서 불산이 누출돼 사내하청 노동자가 죽었다는 뉴스를 보며 섬뜩했다. 그렇게 청년은 공부하고 놀고 연애해야 할 20대 청춘을 오롯이 고된 알바와 하청노동으로 보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15~29살 청년 실업률은 10.2%였다. 6월 기준으로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청년 임금노동자 중 저임금 노동자 비중은 30.0%라고 밝혔다. 국가와 기업은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 청년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청년의 알바 인생에 국가는 없었다. 월급을 계산하는 법도, 돈을 떼이지 않는 법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니, 국가는 있었다. 기업 법인세 인하로 매년 7조원을 깎아주고 생긴 나랏빚을 청년의 월급에서 떼어 메웠다.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해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던 정부는 내년 최저임금을 450원 오른 6030원으로 정했다. 한 시간을 일해도 삼계탕 한 그릇 사먹을 수 없는, 내전 중인 이라크보다 삶의 질 만족도가 낮은 국가에서 청년의 꿈은 시들고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대기업은 청년에게 절망을 안겨줬다. 그가 하청노동자로 일한 세계 1위 조선소 현대중공업은 정규직 2만5009명, 계약직 1919명, 간접고용 비정규직 4만4652명이 일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1년 새 정규직은 1천명 줄고, 하청노동자는 4천명 늘었다. 하청노동자가 복직 약속을 지키라며 100일 넘게 50m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대우조선해양. 선박 수주 잔량 세계 1위 조선소도 1년 동안 정규직은 그대로인데 비정규직은 6천명 늘었다. 배를 만드는 노동자 열 명 중 일곱이 비정규직인 나라에서 청년의 꿈은 오늘도 저물고 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야! 한국사회’ 필진에 새로 합류한 박점규 집행위원은 오랫동안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일해왔으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25일>, <노동여지도>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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