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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만만한 래군씨 / 이태호

등록 2015-07-27 18:27수정 2015-07-28 08:26

래군이 형과 김혜진에게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날 밤, 우리는 416연대 사무실에서 밤이 깊도록 함께 있었다. 그리 비장한 분위긴 아니었다. 담담하게 둘의 구속이 확정될 경우 우리가 나누어 져야 할 일감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인권운동 30년? 헛살았구먼! 형은 도대체 그동안 뭘 했길래 대한민국 인권이 아직 이 지경이야? 책임이 크네 커! 감옥 갈 만해.” “허허 그러게. 정말 미안하다 태호야! 근데 짜샤, 넌 참여연대에 20년이나 있으면서 대체 뭘 했길래 검찰이 나같이 법 없이도 살 사람을 잡아가게 하냐?” “헤헤헤…맞네 맞아! 근데 말은 바로 하자고. 형은 법이 없어야만 살겠어! 보니깐 형은 정권 바뀔 때마다 한번씩은 꼭 감방에 가는구먼! 정기적으로 교정행정 감시하러 가나 봐? 과연 인권운동가야!” “진짜 정권마다 한번씩은 가게 되네. 쩝! … 하여간 내가 가서 보고서 써 올 동안 넌 나 대신 열심히 일해라 잉? 놀지 말고!”

이틀 뒤인 제헌절, 그는 결국 구속되었다. 특수공무집행 방해 혐의란다. 검찰은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을 문제삼아 그가 폭력행위를 주도했다고 단정했지만,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 손을 들어주었다. 같은 날 대법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판결을 유보하고 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다. 속이 상했다.

제헌절 날 그에게 상은 못 줄지언정 특수공무집행 방해죄로 잡아넣다니. 지난 한 세대 이상을 이 나라 검찰과 경찰이 제대로 다하지 못한 인권보호의 공적 의무를 대신해온 인권운동가에게 너무 치사하고 악의적인 죄목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에 쥐꼬리만큼이라도 헌법정신이 작동하고 있다면 그것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정권의 방패막이를 자처해온 검찰이나 경찰이 아니라 박래군과 인권운동가들이 온몸을 던져 숱한 불의에 맞서왔기 때문일 터이다.

2001년 벽두, 영하 10도의 눈바람이 몰아치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박래군은 인권활동가들과 2주간의 노숙단식농성을 강행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서였다. 그때 얼굴과 손발에 동상을 입어 형은 아직도 매년 겨울마다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는 늘 이 나라 공권력이 결코 지켜주지 못했고 도리어 핍박해온, 빼앗기고 내몰린 이들이 고통받는 현장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웃기를 원했다. 그 결과 4번의 구속이라는 기록을 훈장처럼 달게 되었다.

보수언론에서는 그가 가는 곳마다 불법과 폭력이 난무했다고 매도한다.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제도와 법이 지켜주지 못한 사람들이 내몰리고 있는 현장에는 항상, 주판알을 튀기는 일에 밝지 않은 그가 있었다고 말해야 옳다. 그는 그렇게 살아왔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계산에 밝지 못하기로는 형수도 못지않을 듯싶다. 박래군, 김혜진, 그리고 나를 포함한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 주요 간부들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5월 어느 날, 형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참을 망설이던 형수는 이렇게 물었다. “저기, 박래군씨한테는 차마 물어보지 못했는데요, 이번에도 용산 때처럼 검거를 피해 명동성당 같은 데서 지내야 할까요?” “아니요, 조사에 응하고, 잡아가면 잡혀가야죠. 도피할 일은 아니라고 봐요. 용산 때는 가족들이 폭도로 매도당하던 상황에서 대책위 간부들이 최대한 오래 버티면서 싸우기로 했던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어요.” “다행이네요. 꼭 그랬으면 해요. 박래군씨가 워낙 몸이 안 좋아서 도피생활은 무리거든요. 박래군씨한테는 내가 전화했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아주세요.”

그날 난 형수에게 구속되지 않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했다. 그런데 형은 구속되고 난 여기 남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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