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엔터테인먼트란 음악제작사가 있다.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이 회사는 방송음악계의 에스엠(SM)이자 와이지(YG)이자 제이와이피(JYP)라 부를 만한 공룡이다. 회사의 대표작으로는 <개그 콘서트>, <1박2일>, <뮤직 뱅크>, <출발 드림팀>, <응답하라 1994>및 1997 시리즈, <프로듀사>가 있고 방영을 앞둔 노동운동에 관한 드라마 <송곳>의 음악을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사의 경영진은 ‘음악감독’들이다. 그런데 이 음악감독들은 작곡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사는 수십명의 젊은 작곡가들이 음악감독의 손이 되어 일하는 음악공장으로 운영된다.
회사가 방송음악 시장을 크게 점유하기 때문에 작곡가들은 엄청난 음악 생산량을 할당받는다. 창작이라기보다 기계적 생산에 가까운 노동환경이다. 작곡가들은 매달 아주 작은 급여를 받는데 심지어 그들이 음악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세상은 알지 못한다. 크레딧에는 작곡가 대신 주로 ‘음악에 관여하지 않은 음악감독’인 경영진의 이름이 대신 오르기 때문이다. 방송이 성공하면 발생하는 거대한 저작권료 역시 많은 부분 경영진의 몫이며, 작곡가들은 계약에 따라 소액의 수익을 배분받는다. 작곡가들은 방송 제작진과 직접 접촉하지 못하도록 관리되는데, 그래서 자기 음악이 어떤 프로그램에 삽입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작곡가들이 방송사와 직접 만나면 음악 중개자로서 회사의 시장 지배력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결국 방송사는 누군지도 모르는 유령 음악가들에게 방송음악을 맡겨온 셈이다. 그럼에도 이 회사가 업계에서 과점적 지위를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더 싼 가격에 음악을 제공하니까. 실질적으로 이 회사 ‘음악감독’들의 업무는 방송사를 위해 작곡가에 대한 착취를 대행해주는 셈이다.
작곡가들은 왜 이렇게 가혹한 조건을 받아들일까? 어리고 절박할 때야 미래를 기약하면서 버티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다. 회사 역시 그 사실을 알기에 경력이 쌓인 소속 작곡가들을 해고한 뒤 더 어리고 더 절박한 작곡가들을 새로 고용한다. 기존의 작곡가들은 많은 히트곡을 썼더라도 경력이 빈털터리가 된 채 쫓겨날 수도 있다. 저작물과 관련된 권리를 회사에 양도하여 귀속시키도록 요구받기 때문이다. 로이 엔터테인먼트의 경영 방식은 비윤리적인 것을 넘어 비상식적이지만, 전자공학의 문외한이 전자회사를 소유하고 기계공학의 문외한이 자동차회사를 소유하는 경제제도 아래서는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예술가의 창작권조차 성역일 수 없다. 이 회사가 음악을 맡게 된 <송곳>의 유명한 대사처럼, “여기선 그래도 되니까”.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노동소득의 불평등 원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현대사회에서 기업 경영진이 받는 높은 급여는 기업의 생산성이나 부가가치에 대한 기여나 성과와는 무관한 ‘행운의 소득’이다. 데이터는 결코 100억원 연봉의 경영자가 회사에 100억원 더 많은 수익을 안겨주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의 급여는 경영진의 업무 능력이 아니라 업무 영역으로 인해 결정된다. 피케티의 표현 그대로 경영자는 “자신의 급여를 정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평등은 사회의 시장 규범에 의해 수용된다. 로이 엔터테인먼트의 예를 든다면 이렇게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경영진이 회사의 업무 내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또 그럴 능력이 없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의 급여를 정하는 지위”에 있다. 그리고 값싼 음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방송사들에 의해 예술가를 존재 수준부터 착취하는 경영방식이 시장에서 추인되는 것이다.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알려왔습니다
<한겨레>는 8월20일 문화면 “TV 속 배경음악마저 ‘열정 페이’의 결과물이었나” 등 제목의 기사에서 TV·영화 등의 배경음악 제작사인 주식회사 로이가 작곡가들의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고 부당한 계약조건을 강요했다는 등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이는 일부 작곡가들과 계약과정, 저작물의 사용방법, 저작권료 수입 배분방법 등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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