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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소연의 볼록렌즈] 어차피

등록 2015-08-05 18:33

시인이 되고 싶다는 한 학생이 종강을 앞두고 질문을 남겼다. 월세를 내는 삶도 벗어나고 싶고, 좋아하는 여자가 생기면 결혼도 하고 싶고 자식도 낳고 싶은데, 시를 쓰면서 그럴 수 있는지 오래 고민을 해왔다고. 솔직한 조언을 해달라고. 전업 시인으로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내 삶이 가능했는지 하나하나 헤아려보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시 생각했다. 월세를 벗어나서 전세를 살고 싶다고 한들 매물이 없다시피 하고, 구했다 한들 2년 계약이 끝나면 집주인은 턱없이 보증금을 올리거나 월세로 전환하려 하고, 그게 억울하여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장만한다 한들 은행 빚에 쫓기며 ‘하우스푸어’로 살아가야 한다. 거의 모두가 비슷한 처지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으며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 살아가려면, 어떤 식으로든 거대자본의 부속품으로 일정 정도 자신의 삶을 헌납한 노예를 자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취업대란과 청년실업의 시대에선 노예를 자처하며 구걸을 해도 나를 노예로 사용해줄 곳을 찾는 일도 하늘의 별 따기다. 직장인 둘 중 하나는 비정규직이다. 처지가 이러하므로, 결혼 평균연령은 높아만 가고 무자녀 가족이 늘어만 간다. 이것은 시인에게 한정된 삶의 풍속도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풍속도다. 어쩌면 이러하기 때문에, 누군간 예술가가 되는 길만이 유일한 살길이 된다. 어차피 굴레 안에서 끝없이 허덕일 것이므로, 기왕이면 내가 꿈꾸던 일을 하겠다는 결의만이 가슴에 남게 되어서이다.

김소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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