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어 라퐁텐. 주지사로, 총리 후보로, 때론 당 대표로서 독일 사민당을 이끌며 16년을 집권했던 헬무트 콜 독일 총리에 맞섰던 인물이다. 게르하르트 슈뢰더와 함께 1998년 사민/녹색 연립정부를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 라퐁텐은 전통 케인스주의 경제정책과 약자를 위한 사회정책을 고수하며 슈뢰더 총리와 갈등을 빚은 끝에 임기 5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재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그는 “펀드자산을 가진 노동자 수가 크게 증가했고, 이로 인해 친기업정책을 지지하는 노동자가 사민당을 우경화시켰다”고 일갈했다.
독일에서는 주식 보유기간이 1년 미만일 경우 시세차익은 투기로 간주되기 때문에 임노동자가 개미투자자가 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여유 노동소득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일 또한 간단치 않다. 독일법은 보유기간 10년 미만의 부동산 거래를 투기로 정의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유 임금소득은 전문가에 의해 운영되는 펀드로 흘러들었고, 독일 노동자의 소득은 조금씩 기업 이익에 종속되었다. 노동자가 정부의 친기업정책을 지지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된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선진 자본주의의 진화는 자산을 쌓은 일부 노동자와 기업가의 이해를 일치시켰다.
슈뢰더가 이끄는 사민/녹색 정부는 2003년부터 ‘의제 2010’이라 불리는 노동시장 개혁과 사회보장제도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의제 2010의 핵심은 청년층 인구 감소와 노령 인구 증가, 높은 실업률 등을 고려하여 연금, 실업수당 등의 사회보장을 축소하고 펀드로 자산을 증식하는 부유한 노동자의 자기부담을 높이는 데 있었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사회보장제도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수는 늘어만 갔고, 2015년 독일 역사상 처음으로 저임금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저임금제가 도입되었다.…
인공지능, 알고리즘 등 디지털 기술의 진화는 노동자의 분화를 더욱 촉진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미국의 디지털 4대 기업은 2014년 약 406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들 기업의 직원 수는 31만명을 조금 넘는 수준이니 직원 1인당 약 13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셈이다. 비교하자면 2014년 인구수가 약 340만명인 부산의 국내총생산은 70조원이며 1인당 국내총생산은 2천만원을 겨우 넘어섰다. 13억원과 2천만원, 무려 65배의 격차다. 주문형 경제를 대표하는 ‘우버’의 기업가치는 48조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반면 뉴욕에 거주하며 우버를 주업으로 살아가는 운전자의 1년 매출은 1억원 남짓으로,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이는 시간당 3만5천원에 해당한다. 여기서 차량 유지비, 자동차 보험료 등을 빼고 나면 시간당 소득은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4대 보험은 온전히 운전자의 몫임을 고려한다면 우버는 값싼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을 진화시키고 운영하는 개발자를 우버 운전기사 등 임시직 노동자와 같은 범주의 노동자로 볼 수 없다.
디지털 기술을 둘러싼 노동의 양극화를 인식한듯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은 우버와 에어비앤비 등 주문형 경제가 불안정한 계약직 일자리를 양산한다며 디지털 경제의 부정적 영향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장 자동화를 포함해 자동주행 자동차, 로봇 저널리즘, 핀테크 등의 디지털 기술은 자본의 효율성을 높이고 소수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제공하는 반면 다수 노동자를 저가 노동의 굴레로 빠뜨린다.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하여 자본에 맞서기에는 노동자 사이의 이해가 크게 충돌한다. 노동자의 차이를 인정하며 다수의 불안정 노동자를 더욱 강하게 배려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을 논의할 때다.
강정수 ㈔오픈넷 이사
강정수 ㈔오픈넷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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