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친척 동생 결혼식에서 아주 이색적인 주례자 소개를 들었다.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삭발투쟁에 참여하셨습니다.” 그제야 주례자의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삭발’, ‘투쟁’, 모두 결혼식장에서 주례자의 약력으로 소개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만큼 설악산 케이블카 유치에 양양군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는 증거다.
현수막이 펄럭인다. “명품 케이블카 세계인을 부른다”, “낙후된 지역경제 케이블카로 되살리자”,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악산의 미래입니다”. 내가 요즘 한 달에 반 정도를 보내는 양양은 온통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기원하는 구호로 뒤덮였다. 이 지역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단체가, 아니, 생각지도 못했던 별별 단체들이 케이블카 유치에 힘을 보태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오색에서 끝청까지 3.5㎞구간에 케이블카만 설치할 수 있다면 양양의 미래가 획기적으로 달라지리란 기대가 드러난다.
설치 반대를 위한 오체투지와 결사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삭발투쟁이 둘 다 벌어진다. 이 문제가 과연 경제발전과 환경보호의 충돌일까. 경제와 환경의 대립이라는 틀은 눈속임에 가깝다. 경제효과의 실체는 알 길이 없다. 경제를 ‘살린다’는 언설은 많은 사안들을 아주 단순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메르스로 인한 경제 손실’로 불안감을 조성하고 ‘임시공휴일로 인한 경제효과’로 기대를 부풀린다. 급기야 재벌 사면도 국민경제를 살린다고 한다. 재벌을 위한 특혜가 국민경제 살리기로 둔갑하듯이, 지역의 케이블카 설치는 지역경제를 살린다는 명목이 된다. 실제로 ‘국민’이나 ‘지역’보다는 특정 계층에게 특혜를 주는 사업이다. 수년간 진행이 안 되던 사업이 작년에 박근혜 대통령의 평창동계올림픽추진위 방문 이후 가속도가 붙었다. ㈜설악케이블카는 박정희의 사위인 한병기에서 그의 아들 한태현과 한태준에게로 이어지는 사업이다.
특혜를 주고받는 이들의 사심, 여전히 토목으로 성과를 내어 표를 얻으려는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경제효과를 쉽게 믿는 지역민의 안일한 판단이 결합한 사업이다. 지역언론도 한몫한다. <강원일보>는 지난달에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김선우 시인의 칼럼을 누락시키기도 했다.
지율 스님이 만든 4대강 다큐멘터리 <모래가 흐르는 강>을 보았다. 지율 스님이 카메라를 들고 걷는 길은 사람의 그림자를 모두 담고도 남을 정도로 커다란 대형 굴착기의 바큇자국으로 가득했다. 사업보고서에는 절대 담겨 있지 않을 파괴된 내성천의 황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내성천은 모래가 없어지고 흐름이 막혔으며 녹조가 가득하지만 영주댐 공사는 한창이었다. 일부 지역 주민의 삶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많은 이들이 살던 곳에서 강제 이주를 당하고 제대로 보상금도 받지 못했다.
익숙한 개발의 반복이다. 하나같이 ‘친환경’을 내세운다. 새만금(바다), 4대강(강), 그리고 이번에는 설악산(산)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이며 지역경제 파급효과가 5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새만금 간척사업, 경제효과가 40조원이라며 무려 22조원을 쏟아부은 4대강 사업, 모두 환경적으로는 재앙임이 드러났지만 경제효과는 미지수다. 늘 거짓말이 필요한 개발을 한다. 양양군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설악산 케이블카의 경제효과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케이블카뿐만이 아니다. 설악산 정상 부근에는 4성급 호텔과 식당을 건설할 계획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편하게 자연이 망가지는 방식이다. 욕심이 재앙을 부른다. 인간이 자연을 폭력적으로 대할수록 자연은 그 대가를 적극적으로 인간에게 돌려줄 것이다. 자연은 수동적이지 않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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