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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싱크탱크 시각] 고용에 대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 이상호

등록 2015-08-23 18:46

청년실업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면서 최근 몇몇 재벌들이 앞다퉈 대대적인 일자리 만들기를 발표하고 있다. 정부와 경제 6단체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청년 일자리 기회 20만+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정부-경제계 협력 선언’의 후속조처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화, 롯데, 에스케이, 현대차, 삼성 등이 잇따라 발표한 계획을 모아보면, 앞으로 2~3년간 창출될 일자리가 10만여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들이 직접 만드는 일자리는 이보다 훨씬 적을 뿐 아니라 모호하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뻥튀기’ 계획만 남발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가령 삼성이 향후 2년간 만들겠다는 3만개 일자리 중에서 직접 채용은 1만에 불과하다. 나머지 2만명에게는 관계사와 협력사의 인턴십, 아니면 직업체험 및 창업지원 프로그램 참가 등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그나마 1만명 직접고용 일자리 또한 평택 반도체 공장의 증설, 호텔신라의 면세점 확장 등 기존 투자계획에 따라 예정된 필요 인력의 채용일 뿐이다.

현대차도 마찬가지다. 사상 최대 규모인 1만500명을 새롭게 뽑겠다고 발표했지만, 9500명은 이미 예정된 채용 규모이고 나머지 1천명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현대차로서는 떡 본 김에 제사까지 지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현대차는 정부로부터 해마다 약 100억원의 ‘상생고용지원금’도 받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일석삼조 아닌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여력을 지닌 대기업의 고용 기피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그러나 국내 10대 재벌과 500대 상장기업은 지난 10년 동안 고용 규모를 꾸준히 줄이고 있다. 또한 이들은 경기변동 위험을 협력업체에 분산시키고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상시 지속 업무’를 하는 인력까지 외주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10대 그룹의 이익은 꾸준히 증가하며 2014년 말 현재 사내유보금이 500조원을 넘었는데도 대기업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이고 청년층 고용 상황은 여전히 ‘빙하기’에 머물러 있다.

이제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국내 투자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재벌 대기업들이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조금이라도 인식하고 있다면 현금성 자산부터 과감하게 풀 일이다. 2015년 3월 말 기준 10대 재벌의 현금성 자산은 모두 45조8746억원에 이른다. 이 중 10%만 ‘일자리 만들기’를 위한 국내 투자에 할당하더라도 직간접적인 고용창출 효과는 엄청나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국내 투자의 평균취업유발계수(2013년 기준 10억원당 13.1명)를 그대로 적용하면, 새로 만들어질 수 있는 좋은 일자리의 수가 약 6만에 이른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기업에 대한 고용 확대 요구는 어느 때보다 크다. 수출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의 결과로 고용 여력이 대기업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기업의 고용 부진은 여전하다. 이상한 계산법으로 청년 일자리를 몇 만개씩 만들겠다고 하지만, 사실상 목적은 다른 데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사상 최대 고용계획’이라는 광고로 고용에 대한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 해고 요건의 완화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부모 일자리’의 공격 수단으로 삼아서도 안 된다. 최근 발표된 재벌들의 ‘사상 최대’ 신규채용 계획이 예년과 같이 빈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빠른 시일 안에 제시해야 한다. 대기업의 고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제대로 실현될 때 청년실업 문제는 비로소 해결의 돌파구가 열리게 될 것이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lshberlin06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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