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에어아시아의 회장은 영국 축구의 하부 리그를 전전하다 마침내 1부인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축구팀 퀸스파크 레인저스(QPR)를 인수했고, 거액을 투자하여 유명 선수들을 보강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한국의 축구 영웅 박지성 역시 이 시기 퀸스파크 레인저스에 합류했다. 축구 전문가들은 새 시즌에 이 팀이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으로 일대 도약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퀸스파크는 시즌 초반 구단 130년 역사상 최악의 성적이자 영국 축구 역사상 최다 무승을 기록한 끝에 2부 리그로 다시 강등되고 말았다. 이유가 뭘까?
구단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팀의 승격에 공헌했던 기존의 선수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후보로 밀려나거나 다른 팀으로 방출됐다. 기존 선수들은 충성 보상이 결여된 구단 문화를 비난하고 구단이 돈을 엉뚱한 곳에 뿌리고 있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기존 선수와 새로운 선수의 갈등이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는데, 경기 도중 두 그룹의 선수 사이에서 패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정도였다. 사실상 태업이 이뤄진 것이다. 감독은 “선수들이 팀의 추락을 즐기고 있다”고 말한 뒤 얼마 지나 경질됐고, 새로 취임한 감독은 분위기 쇄신을 위해 기존 선수들을 후보에서 선발로 복귀시키고 새로 영입한 선수들을 선수단에서 정리하는 결정을 내렸다. 박지성 역시 한 시즌 만에 여기에서 네덜란드 축구팀 페에스베(PSV) 에인트호번으로 보내졌다.
반면 노련한 명문 축구구단은 스타 선수의 영입보다 급여 체계의 관리를 우선하는 경영 전략을 고수한다. 구단 수익을 선수 영입에 무리하게 투자하면 구성원들의 충성으로 일군 성공의 혜택을 새로 영입된 용병들이 차지하는 ‘충성의 역설’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중소기업에서 흔히 발견된다. 고속 성장하는 기업들은 기존 구성원들에게 수익을 분배하기보다 전문직, 명문대, 고학력의 자격을 갖춘 관리직을 강화하여 조직 체계를 대기업과 유사한 형태로 물갈이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유능한 구성원들 역시 회사에서 충성을 보상받기보다 경력을 인정받아 더 좋은 조건의 회사로 이직하길 원하게 된다. 기업과 구성원의 가치가 동반 성장하지 않는 문화가 만연하면 각각의 최대 이득 전략이 서로의 최선과 거리가 멀어지는 딜레마가 생긴다. 구성원은 기업의 급격한 성장을 경계하고, 기업은 업무의 성공으로 두각을 드러내는 구성원을 잃게 될까 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에 다니던 지인 한 명이 최근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근속하는 동안 회사의 매출액은 수십배 뛰어올랐지만 그의 급여는 제자리였고, 업무량만이 서너 명이 감당해야 할 수준으로 늘어났을 뿐이었다. 그는 구직난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한편 회사 역시 구인난에 처할 게 틀림없었다. 그가 사직하면 급하게 프리랜서를 고용하여 업무의 빈 구멍을 메워야 할 텐데 기존에 지출하던 급여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체 안에서 충성과 신뢰의 가치가 붕괴하는 현상은 국가 경제 단위로 확대해도 관찰된다. 한국 100대 기업의 총매출액은 1990년에서 2010년 사이 20년 동안 10배 이상 증가했다. 그런데 우리의 가계소득도 10배가 되었나? 같은 기간 1인당 국민소득은 3.5배 증가했을 뿐이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제자리인 셈이다. 국산품 애용을 외치고 금붙이를 모아 바치던 국민들의 일화는 동화처럼 아득한 전설이 되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는 해외 기업에 의한 시장점유율 침식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그들의 제품’을 ‘우리의 제품’이라 믿어주던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두 사라졌기 때문이다.
손아람 작가
손아람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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