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계정이란 국민경제의 테두리 안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들이 일정 기간 이룩한 경제활동의 성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통계모형이다. 엄격한 원칙에 따라 작성되므로 시계열 분석뿐 아니라 국제 비교도 가능하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계정 체계에 포함되는 각종 통계들의 발표 주기는 통상 3개월(분기)이다. 오늘날엔 상장기업의 성적표도 3개월마다 꼬박꼬박 세상에 발표된다. 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를 웃도느냐 밑도느냐에 따라 어닝서프라이즈니 어닝쇼크니 하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이 얼마 전 월가를 자극하는 발언들을 연이어 쏟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기업의 단기 실적에만 집착하다 보니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며, 이를 ‘분기 자본주의’(Quarterly Capitalism)라 꼬집었다. 장기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현행 소득세 제도를 개정해야 한다는 뜻도 내비쳤다.
단기 실적을 중시하는 근시안적 태도가 기업의 장기적 성장은 물론, 나아가 국민경제 전반의 불안정성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는 목소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쩍 힘을 얻고 있다. 클린턴 전 장관 이전에도 앨 고어 전 부통령, 영국의 찰스 왕세자 등이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물론 반론도 충분히 나올 법하다. 그나마 금융시장의 압력이 없다면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더욱 떨어뜨릴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마저 시야를 근시안적 틀에 가두려 드는 경우다. 워낙 국내 내수 경기가 위축돼 있다 보니, 얼마 전 우리 정부가 주요 국책연구원의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소비심리 회복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다그쳤다는 후문도 들린다. ‘3개월 안에 놀랄 만큼 소비심리를 살릴 묘안’이라는 전제를 달고서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정부마저 ‘분기 자본주의’에 흠뻑 젖어든다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더 클 수 있다.
최우성 논설위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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