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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이산가족 만남 / 박창식

등록 2015-09-09 18:29

1964년 10월9일 오후 4시55분, 일본 도쿄의 조선회관. 아버지 신문준씨는 딸 신금단의 이름을 불렀다. “아, 금단아.” 딸은 울음을 머금으며 “아바이” 그렇게 부르고 얼싸안았다. 1951년 1월 함경도 이원에서 12살 먹은 딸을 두고 집을 떠났다가 이산가족이 된 지 14년 만의 일이었다. 딸은 육상선수가 되어 1963년 신흥국 경기대회(GANEFO·가네포)에서 금메달을 따고 남쪽에 살아 계실 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지는 딸을 만나기 위해 도쿄 올림픽이 열린 그곳으로 날아온 것이다.

아버지와 딸은 고작 7분간 만날 수 있었다. 북한 선수단이 일본을 떠나려고 니가타행 열차를 타기 직전이었다. 딸은 “어머니와 동생들은 다 잘 있어요”라고 했고, 아버지는 “그래, 나도 서울에서 잘살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와 딸은 눈물범벅이 되어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좋아요….” 아버지도 딸의 두 손을 쥐고 허공만 쳐다보았다. 기차 시간이 되었다고 재촉하는 사람들한테 떠밀려 딸은 울부짖다가 “아바이, 잘 가오” 이 한마디를 남기고 차에 올라 멀어져 갔다. 우에노역으로 달려간 아버지는 역장실에서 기다리던 딸을 한번 더 안아보았다.(김연철, <냉전의 추억>)

신금단 부녀의 만남은 한국전쟁 뒤 첫 이산가족 상봉이었다. 아버지는 그때의 만남을 곱게 액자에 넣어두고 그리워하다가 1983년 12월 67살로 세상을 떴다. 도쿄 만남이 부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남과 북이 이산가족 만남 행사를 갖기로 모처럼 합의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두번째다. 이산가족 만남은 1985년 이래 조금씩 제도화되어왔다. 김대중 정부 때 6번, 노무현 정부 10번, 이명박 정부 2번 대면 만남이 실현되었다. 가족 이산을 단장의 아픔이라고 한다.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것 같다는 뜻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기에 이번 한차례 합의는 턱없이 부족하다. 만남 횟수를 늘려야 한다. 정부가 대화 능력을 발휘할 때다.

박창식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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