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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웰컴 / 이라영

등록 2015-09-16 18:47

삼바라는 이름의 세네갈 사람과 알고 지낸 적이 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사람 이름으로 ‘삼바’는 내게 낯설었다. 삼바… 춤과 음악, 그 이름에서는 흥겨운 소리가 들렸다. 흥겨운 이름과는 달리 삼바라는 아프리카인의 삶은 고난으로 가득하다. 국내에도 번역되었고 영화로도 개봉한 소설 <웰컴, 삼바>는 프랑스에 온 지 10년이 넘어도 체류증을 받지 못한 ‘불법체류자’ 말리 청년과 그 주변의 이민자들을 다룬 작품이다. 원제에는 ‘웰컴’이 없는데 한국에 번역된 제목에는 ‘웰컴’이 붙었다. 더 잘 어울린다. 삼바는 유럽에서 ‘웰컴’ 받지 않는다. 합법적 체류를 보장하는 체류증이 없으면 존재를 증명할 길이 없고 살아온 흔적을 알릴 수 없다. 모든 공적인 삶에서 소멸된다. 삼바는 자신의 신분을 들키지 않고 ‘미국 농구선수’ 같은 흑인으로 보이길 원했지만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파도에 휩쓸려 해안가에 자는 듯 누워 있는 세 살짜리 아이의 시신 사진을 보며 내가 떠올린 단어는 ‘웰컴’이었다. 2009년에 개봉한 <웰컴>이라는 프랑스 영화도 한 쿠르드 난민이 주인공이다. 청년은 목숨을 건 밀항에 실패하자 수영으로 도버 해협을 건너려다 결국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차가운 바닷속에서 죽는다. 이탈리아로 밀항하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의 배가 자주 침몰하는 람페두사의 비극처럼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는 죽음이 침몰하고 있다.

12일 파리에서 ‘이민에 대한 시각을 바꾸기’라는 문화행사가 있었다. 이민자에 대한 이미지는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고 경제에 부담 주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그러나 이민자들, 특히 프랑스의 경제활동에서 ‘비공식’ 존재인 불법체류자는 정작 경제가 굴러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들은 위험하고, 더럽고, 부당한 노동을 싼값에 저항 없이 감수한다. 노동자를 더 값싸게 ‘사용’, ‘교환’하기에 좋은 구조가 마련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집계되지 않는 노동활동이다. 유령처럼 그들은 프랑스를 청소하고 건물을 쌓아 올리며 아파트의 지하에서 쓰레기를 분리수거하고 있다. 이러한 지하노동이 없는 프랑스의 정의와 자유는 상상하기 어렵다.

사진에 충격받았다는 미국과 유럽의 일부 나라에서 난민 수용 방안을 논의한다. ‘어린아이의 비극’이라서 이렇게 사회적 반향을 크게 일으키고 있다. 한때의 ‘자비’로 난민을 포용하는 듯하지만 언제든 ‘법의 이름으로’ 추방할 수 있다. 난민을 ‘받는다’는 입장으로는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난민들은 프랑스(유럽)에서 뭔가를 얻으려고 ‘왔다’기보다 제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떠난다’. 어떻게 그들은 제 나라를 떠나 난민의 신분이 되었는가. “세상 사람들은 열대 지방의 물고기들을 훑어갔지만, 어부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지하자원은 모조리 캐갔지만, 광부들은 원치 않았다. 모든 것을 다 가져갔지만,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284쪽)

드라마 <용팔이> 9회에서는 ‘불법체류’ 여성의 출산 장면이 나왔다. 위급한 상황이지만 죽는 것보다 병원에서 신분이 발각되어 추방당하는 것이 더 두려워 집에서 용팔이에게 제왕절개 수술을 받는다. 합법적으로 거주하지 않는 인간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애초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았기에 죽음도 없다. 하지만 ‘불법적’ 존재가 드러나면 그는 소설 속의 삼바처럼 철저히 부정의 존재가 될 것이다. 한국인이 ‘아니고’, 신분증이 ‘없고’, 의료보험도 ‘없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전세계에 ‘삼바’가 있다. 지금까지 시리아를 탈출해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이 713명이라고 한다. 그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이는 단 3명이다. ‘웰컴’은 극히 드물다.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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