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근 감독은 한국 사회에서 화제와 논란의 인물이다. 그의 감독 경력은 비주류로서 주류에 맞서온 도전의 여정으로 그려졌지만, 늘 따라다닌 혹사 논란은 그 도전의 정당성을 의문에 붙였다. 하지만 이런 논란은 그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의 감독이 된 뒤 사라졌다. 그는 청와대에서부터 대기업까지 칭송받는 리더십 강사가 됐고, 독립구단의 눈물겨운 승부를 다룬 다큐멘터리 <파울볼>은 패자부활전을 꿈꾸는 비주류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가 팬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올해 한화 구단 감독으로 부임하게 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그러던 김성근 감독이 요즘 매체와 야구팬들 사이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선수 혹사에다 순위마저 떨어지자 여론이 돌아선 것이다.
김성근 감독을 둘러싼 여론의 반전을 보며 인심의 조변석개를 말하기는 쉽다. 한화의 순위가 조금 더 오르면 여론은 또 변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논란에는 그 이상의 이야깃거리가 있다. 올해 초 한화의 전지훈련 보도사진에서 흙투성이가 되어 쓰러진 선수들에게 팬들은 환호했다. “확실하게 굴려라”가 팬들의 바람이었다. 꼴찌가 밥 먹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며 식사시간이 20분이라는 기사에 대중은 설레었고, 무수한 훈련에 지친 선수들의 모습에 팬들은 박수쳤다. 그리고 전반기 한화의 좋은 성적에 팬과 매체는 ‘마리화나’라는 이름으로 환호했다.
이 이야기를 꼴찌가 노력으로 성공한다는 서사와는 좀 다른 각도에서 보고 싶다. 그것은 진보와 보수가 함께 공유하는, 프로라면 밥값은 해야 한다는 신념과 관련된다. 지난 몇 년간 밥값도 못한 프로들에게는 인권이나 근로환경을 찾을 자격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지난 13일 노사정은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시장 구조 개편에 잠정 합의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청년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것이 주요 명분이다. 저성과자 해고 등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놓고 정부와 기업 쪽은 저성과자를 축출해 능력있는 청년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공정해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이 합의에 대해 ‘잘된 일’ 35%, ‘잘못된 일’ 20%였고 ‘모름/무응답’이 45%였다. 업무 성과가 나쁘거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사람에 대한 일반해고 요건과 절차를 명확화하기로 한 결정에 대해서는 무려 71%가 ‘찬성’했고 반대는 18%에 그쳤다. 바야흐로 밥값 못하는 저성과자는 잘라도 마땅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성립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저자 박민규는 1981년 한국 프로야구의 탄생이야말로, 한국 사회가 드디어 프로의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징표라고 해석한다. 모두가 프로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개막했다. 직장인도, 주부도, 심지어 초등학생도 프로가 되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가 되자 우리는 이제 유용한 인적자원이 되기 위해 평생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밥값을 다하기 위해 평생 전력투구해야 한다. 프로에게 패배는 실패다. 아름다운 패배 따위는 없다.
밥값 못하는 사람이 못마땅한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사람이라면 남의 밥줄 끊기 미안한 것도 인지상정이다. 이 인지상정간의 대립을 타협시키는 것이 법이고 제도다. 그런데 정부가 앞장서 이 긴장과 균형을 깨고 있다. 남의 밥값 노릇을 쉽게 따지게 되자, 서로 밥값 노릇을 추궁하는 사회가 되고 있다. 우리의 밥그릇이 모두 백척간두에 섰다. 이 모습이 나리님들 보시기에 참 좋다고 한다.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hgy4215@hani.co.kr
한귀영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조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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