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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 한국사회] 노벨상 패러독스 / 김우재

등록 2015-10-05 18:48

10월은 잔인한 계절이다. 과학자들에겐 특히 그렇다. 1년에 한 번 과학자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때문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많아야 9명, 그 외의 수백만 과학자들은 화려한 언론의 조명과 자신의 초라한 현실을 대비시켜야 한다. 언젠가부터 노벨상에 대한 회의적 시각들도 보인다. 과학적 창조성은 오히려 이그노벨상처럼 과학을 즐기는 문화에서 등장하는 법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이미 과학의 선진국이었고, 경제적으로 강대국이며, 그곳에서 연구를 수행했던 이들에게 주어지는 노벨상은 태생부터 불공정하다. 젊은 과학자들 대부분은 노벨상에 시큰둥하다. 하루를 연명하기도 빠듯해서다. 헬조선의 과학계 버전이 진행 중이다.

박사학위를 마친 과학자들은 박사후연구원 혹은 포닥이라 불리는 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몰려든다. 비정규직이다. 보스턴 일대의 아이비리그에서 이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의 신흥 명문 스탠퍼드대에도 어느새 한국인 연구자들이 꽤 많이 늘었다. 스탠퍼드대 포닥의 생활은 어떨까? 스티브 잡스가 공부했고, 구글과 애플이 자리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그 동네에, 포닥들은 살 수 없다. 포닥의 연봉은 많아야 4만~5만달러(5천만원 안팎)이다. 월세로만 한달에 200만원 가까운 돈을 내야 하고, 차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미국에서 그들은 팰로앨토의 변두리에 거주하거나 아니면 2년 정도를 기다려야 하는 학교 아파트에 목을 맨다.

더 심각한 것은 이들에게 결혼과 양육이 물리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벌이가 아니라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특히 미국의 의료보험은 최악이다. 내가 만난 스탠퍼드대 포닥의 배우자들은 의료보험이 없었다. 그들은 여행자보험으로 미국에서 살고 있다. 치과는 갈 생각조차 못한다. 배우자와 함께 아이를 키우고, 집값과 생활비를 내고 나면, 몇 년에 한번 한국에 방문할 비행기표조차 버겁기 마련이다. 그렇게 길게는 6~7년, 짧게는 5년의 포닥 생활을 마치고 교수가 될 확률은 열 명 중 한두 명이다. 학부 4년, 대학원 5년, 포닥 5년, 짧게 잡아도 30대 초반에서 중후반의 교수가 되지 못한 과학자들은 사회로 내팽개쳐진다.

교수가 되어도 문제다. 연구비 사정이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과학자가 첫 연구비를 따내는 평균 나이가 42살이라고 한다. 1968년, 생화학자 니런버그는 42살에 노벨상을 받고, 첫 연구비를 신청했다. 미국은 국립보건연구원(NIH)을 통해 대부분의 연구비를 지출한다. 미 국립보건연구원의 연구비 지출은 미국 경제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미국 사회의 실업률이 올라가면, 과학자들의 실업률도 올라간다. 사회가 양극화되면, 과학자 사회도 양극화된다. 미국의 과학계는 미국이라는 사회를 그대로 닮아 있다. 더 이상 미국 대학의 조교수는 정규직이 아니다. 그들 중 대다수가 연구비 경쟁에서 밀려 다시 인력시장으로 내쫓기는 신세가 된다. 미국을 떠나려는 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더 이상 미국은 과학자들의 천국이 아니다.

직업체계는 물론, 과학자들의 화폐라고 할 수 있는 출판시스템도 불공정하다. <네이처>의 논문평가 시스템과 과학출판계의 횡포는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평가가 공정하지 않다면, 경쟁은 결국 진흙탕 싸움이 되고 만다. 과학을 지탱하던 전통적인 직업, 연구비, 그리고 출판체계 모두에서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노벨상의 화려한 조명이 가리고 있는 것들이다.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노벨상은 전혀 과학적인 상이 아니다. 과학에 과학적으로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조차 노벨상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지난해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 없다. 그런 상이다, 노벨상은.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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