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꿈꾸는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일까.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다른 건 접어두더라도 자살하는 사람이 하루에 40명 가까이 되는 나라가 됐다. ‘헬조선’(지옥 한국)이란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그 와중에도 박 대통령이 끈질기게 밀어붙이는 게 있다. 역사 바로 세우기가 그것이다. 말이 바로 세우기지 실제는 21세기 대한민국을 70년대의 ‘아버지 나라’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과거 역사는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의 뿌리이자 거울이다. 인간은 종종 그 뿌리를 미화함으로써 자신의 현재 모습을 분칠하려 한다. 그래서 역사 왜곡과 조작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우리 사회의 주류인 보수기득권 핵심세력의 뿌리는 친일·독재에 닿아 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일제에 빌붙어 권력과 호사를 누리다가 해방이 된 뒤에도 대부분 살아남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시대를 거쳐 지금도 기득권층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정치 경제 언론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영역을 장악하고 있는 그들은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지연, 학연뿐 아니라 혼맥으로 얽힌 그들만의 리그가 따로 있다.
그들이 삼아남은 비결은 반공이데올로기였다. 부끄러운 과거를 지우고, 자신들의 약점이 위협받을 때마다 색깔론을 동원했다. 해방된 지 70년이나 지났지만 우리 사회의 이런 기본 구도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등 극우적 발언을 당당하게 내뱉을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검정제인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도 그 연장선에 있다.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반영되는 검정체제를 유지할 경우 그들의 친일·독재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이다. 그리되면 기득권층의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말로는 역사 바로 세우기 운운하지만 국정교과서 추진의 근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박정희 정권이 국사 교과서를 ‘국정제’로 바꾼 배경을 되돌아보면 역사 교과서 논란의 본질이 드러난다. 국사 교과서는 해방 이후 1973년까지 ‘검정제’로 발행되다가 유신독재 시절인 1974년 ‘국정제’로 바뀌었다. 당시 박 정권은 ‘한국사 교과서의 단일화로 주관적 학설을 지양하고 민족사관의 통일과 객관화를 기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그 속셈은 뻔했다. 우리 역사에서 친일·독재의 흔적을 지우고 유신독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국정교과서를 도입했고, 지금 박근혜 정부의 의도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 정부가 ‘국정교과서’라는 말 대신 ‘단일교과서’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도 유신 때와 닮았다. ‘국정’이라는 말은 국가, 곧 특정 정권이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재단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유신 때도 ‘한국사 교과서 단일화’라고 표현했다. ‘단일화’라는 말은 뭔가 혼란스러운 상황을 하나로 정리한다는 긍정적인 느낌을 준다. 사안의 본질을 호도할 때 쓰는 전형적인 말장난이다.
보수기득권층이 수세에 몰리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색깔론도 다시 등장했다. 그동안 국정교과서 논란에서 정부 여당은 수세에 몰렸다. 국정교과서라는 게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체제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은 등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현행 국사 교과서가 전교조 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좌편향 교과서라며 색깔론을 들고나왔다. 일단 빨간색을 칠해놓고, 이런 ‘빨간 책’을 그대로 둘 수 없다고 국민을 겁박하는 꼴이다.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단순히 교과서 기술 방식을 바꾸는 게 아니다.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조작함으로써 친일·독재에 뿌리를 둔 보수기득권층의 항구적인 권력 유지를 위한 밑돌을 놓으려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런 영구집권을 꿈꾸다 총탄에 스러졌는데,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교훈을 얻기는커녕 똑같이 잘못된 길을 가려 한다. 아버지는 실패했지만 자신은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일까.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정석구 편집인 twin86@hani.co.kr
정석구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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