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석성주씨는 자신이 주제가와 배경음악 36곡을 작곡했던 <문화방송>(MBC) 드라마 <얼마나 좋길래>가 일본에 수출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드라마는 2006년과 2012년, 2013년 세 차례에 걸쳐 일본에서 방송됐다. 2010년엔 디브이디(DVD)로도 일본에서 출시됐지만 창작자에게 지급되는 저작권료를 석씨는 전혀 받지 못했다.
드라마를 수출하면서 다른 음악을 입힐 수도 있기 때문에 방송사는 ‘큐시트’라는 별도의 음악지시서를 제출하고, 이것이 저작권료 지급의 근거가 된다. 드라마를 해외 전송할 때 방송사는 저작권협회에 큐시트를 보내고 저작물 포괄사용승인을 받도록 돼 있다. 나중에 해당 드라마의 큐시트를 확인한 석씨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가 ‘기쁨’ ‘가족’ ‘아픔’ 같은 제목으로 작곡했던 노래들이 큐시트에는 ‘변기통’ ‘살인’ ‘강간’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석씨는 문화방송이 드라마를 일본에 수출하면서 저작권자인 자신의 이름을 음악감독으로 바꾸고, 배경음악 곡명도 바꿔서 큐시트를 작성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에스비에스>(SBS)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게임의 여왕>(2006)에도 참여해 주제가를 비롯한 3곡을 만들었다. 이 드라마는 일본에서 두 차례 방송됐지만 작곡가는 이번 역시 수출에 따른 저작권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이에 석씨는 지난해 <얼마나 좋길래>의 문화방송과 <게임의 여왕> 드라마의 음악감독을 각각 저작권법 위반, 횡령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는 배경음악 작곡가가 방송사를 상대로 해외수출 드라마 음악저작권을 법적으로 주장한 첫 사례이다. 그러나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저작권자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는 문화방송의 주장과, “드라마 제작 당시 석씨가 저작권 신탁에 동의했다”는 <게임의 여왕> 음악감독 쪽 주장을 검찰이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에선 저작권자를 찾기 어려울 때는 저작권료를 공탁하거나 저작권자 찾기 서비스를 이용하는 등 이용자가 적극적인 저작권 실현에 나서도록 정하고 있다. 또 저작권을 양도받는 신탁 행위는 저작권협회만 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지만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로이엔터테인먼트라고 하는 한 음원중개사에서 일하던 작곡가들도 석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 <티브이엔>(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1997> 배경음악을 만든 이들은 뒤늦게 저작권료 확인에 나섰지만 그들이 일하던 음원중개사, 방송사,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등은 모두 작곡가에게는 무슨 음악이 얼마나 쓰였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배경음악 작곡가는 계약관계에서 ‘을’ 중의 ‘을’이며 그들이 만든 음악은 말 그대로 ‘배경’으로 취급된다. 우선 국내에 방송될 때부터 방송사는 큐시트를 엉터리로 작성하고, 저작권협회는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는다. 혹시나 저작권료가 정확히 산정됐다고 해도 음악저작물에 대해선 고리대금업에 가까운 수수료가 붙는다. 일본으로 수출된다면 일본저작권협회, 일본에 있는 음원중개업자, 국내외 음원수출입 중개업자, 국내 음원중개업자들을 거쳐 적게는 저작권료의 66%, 많게는 90%가 수수료로 나간다. 어떤 중개업자는 우선 저작권료를 일부 주고 나서 나중엔 선지급했던 저작권료를 두고 높은 이자를 받는 고리대금업과 비슷한 일도 하고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2013년 일본에서 벌어들인 저작권료가 110억원이 넘는다고 추산한다. 그중 75%가 방송 배경음악에서 나온다. 그 저작권료는 대부분 작곡가에겐 돌아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법과 제도가 유통이라는 정글에서 창작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남은주 문화부 기자
알려왔습니다
<한겨레>는 8월20일 문화면 “TV 속 배경음악마저 ‘열정 페이’의 결과물이었나” 등 제목의 기사에서 TV·영화 등의 배경음악 제작사인 주식회사 로이가 작곡가들의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고 부당한 계약조건을 강요했다는 등의 보도를 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로이는 일부 작곡가들과 계약과정, 저작물의 사용방법, 저작권료 수입 배분방법 등에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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