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들에게 불평등 문제는 늘 거북한 주제이다. 불평등의 절대 기준을 세우기 어려운데다 이론적으로는 경제 규모, 즉 총생산이 증가하면 불평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는 생각이 주류 경제학계 안에서는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전세계 어디서나 불평등에 따른 인간의 고통이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 뒤에는 경제학적 측정 지표로도 불평등이 뚜렷이 심화하고 있다.
경제학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적 실용학문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경제학자에게 불평등 담론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주제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스튜어트 디턴(70)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연구 성과가 높이 평가받는다. 디턴 교수의 핵심 업적은, 미시경제학 차원의 소비자 행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주요 개발도상국의 생활수준과 빈곤을 과학적으로 측정한 것이다.
디턴 교수의 연구 성과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것은 2013년 <위대한 탈출>이 출간되어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요국 서점가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부터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 가운데 몇 가지 토막 이야기를 근거로,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디턴 교수의 이론과 주장이 마치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교수와 대립하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 ‘불평등은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식의 보도이다.
하지만 <위대한 탈출>의 전체 구성과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게 볼 명확한 근거가 없다. 디턴 교수는 책에서, 긴 흐름으로 보면 경제 성장으로 인간의 삶이 개선되었지만 다양한 원인으로 불평등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세상은 너무나 불평등하며, 이에 따른 결과인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디턴과 피케티 교수 사이에 차이가 없다. 요컨대 두 사람은 실증연구 영역과 방법론이 다를 뿐 상호보완적인 성과를 일구어냈다고 봐야 옳다.
박순빈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sb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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