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해고를 현재보다 쉽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9월15~17일 한국갤럽이 진행한 설문조사다. 기업이 유연하게 고용할 수 있어야 일자리가 늘어나므로 ‘찬성’한다는 의견이 46%, 좋은 일자리마저도 나쁘게 만들 수 있어 ‘반대’라는 입장이 41%, 모른다가 12%였다. 오차범위 안이지만 당혹스러웠다. 해고를 쉽게 하는 ‘박근혜표 노동개혁’에 대해 네이버와 다음에 달린 댓글은 반대가 압도적이었다. 일하지 않는 사람만 조사를 한 게 아니라면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지난해 12월29일 정부는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 84개 항목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와 언론은 ‘장그래법’이라고 떠들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장그래가 정규직 시켜 달라고 했지, 비정규직 연장해 달라고 했느냐”고 맞섰다.
새해 들어 이름을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바꾼 정부는 다시 ‘노동개혁’으로 포장하고, 대국민 홍보전쟁에 돌입했다. “노동개혁으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를” 현수막이 전국에 내걸렸다. 스마트폰을 보다 신호등에서 고개를 들면 붉은 새누리당 현수막이 뇌리에 박혔다. 선전의 과녁은 부모 세대였다. 임금피크제를 앞세웠고, 대기업 노조를 제물로 삼았다. ‘당신의 딸 아들’이 일자리를 얻으려면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2015년 9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5살 이상 인구 4261만명 중 임금노동자는 45%(1946만명)다. 노인, 주부, 학생 등 비경제활동인구와 자영업자가 55%. 정부는 이들을 노렸다. ‘표 잃을 각오’라고 했지만 표를 지키는 계략이었다. ‘우리 딸 아들 좋은 일자리’라는 시뻘건 선동 앞에 직장인들은 분노했지만, 대한민국 55%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전략이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3000명을 쫓아낼 때, 노조는 ‘함께 살자’며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평택시민들은 외면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장사가 안 된다며 파업을 중단하라고 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보험, 택시, 일용직으로 일하거나 통닭집을 차렸다. 정부는 재취업을 돕는다며 개인택시 자격을 완화해 쌍용차 시험차량 운전자도 경력을 인정해줬다. 평택시 운행 택시는 인구 274명당 1대로 용인(617명), 광주(650명), 군포(511명) 등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택시기사만 힘들어진 게 아니었다. 보험설계사도, 굴삭기 기사도, 통닭집 사장도 ‘미친 경쟁’에 내몰렸다.
2013년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27.4%로 미국(6%), 일본(11.5%)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6%)보다 월등히 높다. 케이비(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는 국내 치킨 전문점이 3만6천개에 달한다고 했다. 맥도날드 전세계 매장보다 통닭집이 많은 나라, ‘잘린’ 직장인들은 평생 모은 돈을 들고 통닭 기름 속으로 뛰어든다. 열 명 중 한 명만 살아남는 전쟁에 해고노동자와 자영업자가 뒤엉켜 싸운다. 재벌 대기업만 웃는다.
박근혜 정부의 ‘현수막 정치’에 맞서 시민사회단체가 ‘국민투표 정치’를 한다. 단 하루도 남의 밑에서 월급쟁이로 살아보지 않은 대통령이 추진하는 노동정책이 ‘개혁’인지 ‘재앙’인지 묻는다. 전국에 투표소 1만개를 설치하고 누리집(votechange.kr)에서도 투표가 진행된다. 월급쟁이만이 아니다. 자영업자, 주부, 학생, 농민들도 함께한다. 자신의 삶과 직결되는 노동조건을 소수 권력자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직접 민주주의 운동이다. 국정교과서 전쟁이 한창이다. 나쁜 대통령은 국민의 생각을 지배하기에 앞서 국민의 육체(노동)를 지배한다. 청년들을 평생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박근혜표 노동개혁’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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