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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아직은, 화성의 남자 / 이유주현

등록 2015-10-20 18:42

*영화 <마션>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요즘,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하 안철수)의 눈에 부쩍 힘이 들어갔다. 2012년 대선을 석달 앞두고 출마 선언을 할 때의 결연한 표정이 얼굴에 스친다. 최근 그를 만났더니, 정치 입문 뒤엔 예전에 좋아했던 소설과 영화가 시들해졌다고 했다. 정치만큼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줄거리를 지닌 영화나 소설을 만나기 힘들었다는 거다. 그런데, 그가 요즘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있었다. 미국인 앤디 위어가 쓴 공상과학소설 <화성인>. 미국 항공우주국(NASA) 비행사인 마크 와트니가 사고로 화성에 혼자 남아 고군분투하다 구조된다는 ‘화성판 로빈슨 크루소’ 얘기다. “대표직 4개월 동안 압축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안철수는 “‘화성’ 정도는 돼야 흥미가 생기는 것 같다”고 했다.

도대체 어떤 영화길래 그리 재미난가 싶어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든 <마션>을 봤다. 안철수가 그 이야기의 어디에 ‘꽂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척박한 화성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마크와, 정글 같은 여의도에서 생존하려 애쓰는 안철수가 겹쳐 보였다. 1. 토양을 탐사하러 동료 비행사들과 아레스 3호를 타고 화성으로 간다. 1-1.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진심캠프’(안철수 캠프)를 꾸려 정치판에 뛰어든다. 2. 갑자기 몰아친 폭풍으로 동료들은 마크가 죽은 줄 알고 화성을 떠난다. 2-1. 민주당과의 갑작스러운 합당, 대표직 수행에 실망한 ‘안철수 사람들’이 대거 떠난다. 대선 주자로서의 안철수 지지율도 폭락한다. 3. 어렵사리 물을 만들어 감자 재배에 성공하지만 어느 날 폭발사고로 온실이 화성 대기에 노출되는 바람에 감자가 모두 죽어버린다. 3-1. 세월호 정국에서 가까스로 6·4 지방선거에 승리하지만, 전략공천 실패로 7·30 재보선에 패배해 대표직에서 물러난다. 4. 나사에 연락할 방법을 찾던 중 모래 속에 묻혀 있던 화성탐사선 패스파인더를 찾아내 지구와의 교신에 성공한다. 4-1. 존재감 회복을 모색하던 와중에 현 지도부를 비판하고 스스로 혁신안을 내놓으며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일단 여기까지. 영화 속에서 마크는 동료들의 헌신, 과학의 힘, 많은 지구인들의 응원에 힘입어 생환한다. 안철수는 어떨까? 재보선 패배 이후 암중모색의 시간을 거친 뒤 그는 공격적인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그는 문재인 대표(이하 문재인)의 주도로 구성된 혁신위원회의 활동을 “실패했다”고 규정한 데 이어 “해당행위를 했다”고까지 몰아붙였다. 갈수록 더 전투적이다. 2012년 총선·대선 평가보고서 공개 검증을 제안하며 문재인을 비롯한 당 주류를 정면으로 겨눴고, 당 수권비전위원회 설치 등을 주장했다. 그는 “왜 지도부는 내 제안에 응답하지 않느냐”며 거듭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언사가 워낙 ‘도전적’이어서 그가 한마디 할 때마다 언론들이 무시하고 지나가기 힘들다. 언론 보도를 보자면, 안철수는 화성에서 살아남은 듯하다.

이유주현 정치 팀장
이유주현 정치 팀장
그렇다면 언제 지구로 올 수 있을까? 마크의 귀환이 성공한 까닭은 ‘16진법’으로 소통함으로써 나사 과학자들로부터 복잡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과학자 마크가 활용한 ‘16진법’은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는 나사가 아닌 지구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 일반 국민들은 안철수가 사실상 주류의 해체를 의미하는 낡은 진보의 청산을 요구하는 게 실현 가능한 일인지, 3년 전 총선·대선 패배의 책임을 검증하는 것이 왜 필요한지, 본인은 혁신위원장을 고사했으면서 당내 수권비전위원회는 왜 만들자고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 안철수의 혁신론은 진의와는 별도로, 타인을 공격함으로써 득점하려는 정치공학으로 비치기도 한다. 안철수, 그는 아직 화성의 남자다.

이유주현 정치 팀장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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